아가리 속에 들어간 자의 한숨
짐승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놈은 어느 날 농장 앞에 나타났다. 처음에 농장 주인은 순전히 호기심에 먹던 빵을 던져주었다. 녀석은 씹지도 않고 꿀꺽하더니 다시 그 시커먼 동굴 같은 아가리를 벌렸다. 재미가 들린 주인은 당근이며 호박이며 하는 농작물을 차례로 던져주었다. 이번에도 녀석은 전부 받아먹었다. 그때부터 놈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것이 주인의 낙이 되었다. 일을 나가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주말 내내 짐승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것이 일상의 중독이나 강박처럼 되어버렸다. 짐승은 지치지도 않고 별도 달도 뜨지 않은 밤처럼 칠흑 같은 아가리를 벌렸는데 그때마다 주인도 홀린 것처럼 먹을 것을 던져주다가 이제는 키우던 닭도 돼지도 소도 그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농장에는 잡초만 무성했고 주인도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저 짐승을 죽여야지 없애야지 하면서도 기어코 그 아가리에 다시 먹을 것을 던져주는 자신을 발견하며 주인은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더는 먹을 것이 없어진 주인은 자신의 팔 한 짝을 시험 삼아 짐승의 아가리에 밀어 넣었다. 자신에게 깃털만큼의 애정이라도 있길 바라면서. 그러나 짐승은 망설임 하나 없이 먹어치웠다. 팔이 없어진 주인은 자신의 허름해진 집을 뒤돌아 보았다. 한때는 단정하고 깨끗한 집이었다. 그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이 한 발자국 아가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숨을 한 번 쉬고 눈을 감았다. 입을 닫은 짐승은 그제야 뒤뚱뒤뚱 다른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중독되어 있다. 게임, 월급, 술, 일, 사랑, 우울, 도박, 섹스, 성공일 수도 있다. 중독의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조금씩은 중독되어 있다. 중독된 사람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독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미 얼굴이 벌겋게 취해있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중독의 마지막은 늘 자기 파괴로 끝난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살기 위해 죽으러 간다. 요즘에는 김유신의 말 생각이 자주 난다. 말 위에서 술에 취한 채 잠이 든 자신을 발길을 끊기로 한 기생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애마의 목을 쳤던 김유신. 그 정도 각오는 해야지 중독을 끊는 걸까. 애정하는 무언가의 목은 쳐내야지 다시 시작할 수 있던 걸까.
마약도 재활 센터가 있는데 관계에서 오는 중독은 그런 것도 없다. 애정과 결핍은 어쩔 수가 없이 타인에게서 채워야 한다. 기름을 채우러 주유소에 들르는 것처럼. 그러나 그 채움이 너무 잦아진다면 연료탱크를 점검하든 가짜 기름인지 확인하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관계의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 그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차라리 자동차에 앉아 불을 지를지언정.
다 내주어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다. 나 스스로 놀랄 정도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의 마지막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파산하기 직전에 은행에 적금을 든 사람처럼. 이번 달에 출금된 숫자를 보며 속으로 아닐 거야라고 되뇌는 것. 나는 한 번도 만기 된 적금통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진정한 사랑의 주인인 양 들먹이기도 했다. 내가 해주는 걸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고마워해주고 나를 더 사랑해 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주인인 적이 없었다. 저 시의 주인처럼. 나는 내가 통제력을 갖고 결정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내어주고 내어주다가 팔 한쪽까지 내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게는 목을 칠 애마도, 차에 앉아 불을 지를 용기도 없었다. 결국 마음 한쪽이 상어에게 물린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 시커먼 짐승의 아가리에 들어가 있는 기분. 그것은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예정된 결말을 알고 있던 자의 한숨이다. 결국 모든 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던 자의 참담함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자의 체념이다. 그렇게 끝까지 가보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죽든지, 어떻게든 살아가든지. 중독됐던 나날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모든 건 내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는 것 또한 내 선택이다. 중독의 마지막은 자기 파괴다. 그리고 그 파괴는 무조건적인 끝을 암시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것들은 파괴해야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중독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