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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Apr 23. 2024

3-2무언가 문제가 생겼구나

(소설) :  마음으로 쓰는 편지 - 아빠 안전벨트 매


3-2  무언가 문제가 생겼구나


' 아이에게 무언가 심상찮은 문제가 생겼구나'


불안한 생각에 서둘러 병원을 찾았습니다.


지수가 어릴 때만 해도 자폐증이란 용어도 생소했고 전문적인 치료시설이나 상담을 받을 만한 곳이 없어 부모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자폐증 치료에 효험이 있는 곳이란 소문만 들으면 열일을 젖히고 몰려  갔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갔지만 자폐치료센터 라 이름만 내걸었지 대부분 검증도 안된 처치로 부모들의 기대심리만 노린 사술에 불과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수는 지인으로부터 자폐증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 불리었던 서울대학병원의 ○○○교수님을 소개받아 비로소 전문적인 검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자폐증 입니다."


자폐증. 완치 불능. 장애아.

진단결과를 듣고 진료실문을 나서자 머리 속엔 부정적인 단어만 맴돌았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시간 내내 아내와 난 아이의 손만 꼭 붙든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날이 새기 직전까지 뜬눈 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선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하나뿐인 딸의 순탄치 않을 앞날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올 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얼핏 잠이 들락말락하는데 쿵하는 소리가 들려 거실로 나가니 지수가 식탁위에 놓아둔 자석으로 만든 한글 상자를 꺼내려다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습니다.


잠안자고 뭐해?


화가 난 듯이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 한번 아빠 얼굴 한번 번갈아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음을 짓는데 제 딴에도 겸연쩍었나 봅니다.

 

쏟아진 글자 자석을 상자에 담으려고 업드리는 순간 녀석이 잽싸게 등뒤로 돌아가 냉큼 올라타길래 업어주려고 허리를 펴다가 바닥에 놓여진 자석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소비문화 바로 우리가 지킵니다 '


텔레비죤에서 본 공익광고 문구를 자석으로 된 글자로 문장을 만들어 방바닥에 가지런하게 배열해 놓았던 겁니다.


한글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엄마가 불러도 눈맞춤조차 안하던 아인데,


" 우리 지수가 혹시 서번트증후군 아닐까?"


한글도 배우지 않은 꼬맹이가 문장을 만든 걸 보면 우리 지수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일수도 있으니 희망을 갖자며 아내를 위로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 서번트증후군이란 자폐증을 가진 사람 중  일부가 뛰어난 기억력이나 암산 실력 또는 복잡한 퍼즐을 한번에 풀고 조합하는 능력을 보이는 특징을 말함)


하루종일 엄마품에 안겨도 말도 없고 떼를 쓰거나 조르지도 않으니 늦되고 성격 좋은 순한 아이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장애인 등록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후로 지수 챙기는 일은 아빠인 내 몫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직장이 멀기도 했거니와 양육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전담케어맨을 자처했던 것입니다.


큰소리는 쳤는데 정말이지 육아처럼 고된 일이 없지 싶었습니다.


날마다 밤늦도록 이 방 저 방 뛰노는 지수와 같이 놀아주느라 잠도 제대로 잘수가 없었죠.


토막잠을 자며 겨우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뻐꾸기 알람시계가 잠을 깨우면 졸린 눈을 부비며 일정표대로 아침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첫째, 어렵게 찾은 어린이집 등원시간을 철저히 준수할 것.

지수를 흔쾌히 받아주고 가족같이 보살펴 주시는 원장님을 생각해서 등원시간과 준비물은 잊지말고 지키는게 도리임.


둘째, 아이의 정상발육을 위해 아침밥을 반드시 먹일 것.


마구잡이 뒤죽박죽 어설픈 솜씨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노라면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뚝뚝 떨어지지만 햄 김 달걀 등 지수에게 정상발육에 필요한 영양공급을 꼭 해줘야 함.


셋째, 옷은 단정하게 매일 갈아 입히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줄 것.


거울을 앞에 놓고 몇차례 연습을 토대로 브러쉬빗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빗기고 딴딴하게 양갈래로 나누어 묶어줄 것


아내가 신신당부하며 쪽지에 적어준 내용대로 비몽사몽 반쯤 눈이 감긴 아이를 덜렁 들어 화장실에 데려가 씻기고 내일 입을 옷이라며 아내가 골라놓은 옷을 입힌 뒤 지수를 식탁에 앉혀 밥을 먹입니다. 조그만 입크기에 맞게 자른 햄조각을 밥이랑 구운 김에 싸서 고개를 가로젖는 아이를 얼르고 달래 억지로 떠먹이고는 기저귀와 여벌 옷가지를 가방에 담아 챙겨 넣으면 어린이집 등원 준비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틈만 나면 지수가 사라지는 통에 동이 벌어집니다.


밥을 차려놓고

" 지수야! 밥먹자. "


바람같이 사라지고나면 아무리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안방에 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어린이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쪼르르 뛰어가 방 한 가운데 서서 뚫어지게 텔레비젼만 쳐다보거든요.


" 밥안먹고 뭐해애 ? "

" 지수도 어린이프로를 좋아하는구나 "


기특하고 대견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린이방송엔 별 관심없고 특정 광고방송의 특정한 장면이나 사운드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집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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