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이야기를 통해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며, 선과 악과 같은 도덕적 판단기준 조차도 사실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상대적일 뿐이란 점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했다. 그러니 꼭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인간이 원래 이기적 존재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래, 당신 말처럼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쳐. 그래서 당신이나 나도 다 이기적이야. 그런데 그것을 알면 뭐가 좋아? 세상엔 온통 이기주의자들뿐이니 그 우울하고 비참한 실체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야? 아니, 그것을 안다고 해서 뭐가 그리 좋은데? 오히려 착각이라고 해도 이 세상의 따뜻함을 믿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좋은 질문이다. 이 세상이 이타주의자들이 많은 따뜻한 곳이라고 믿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왜 자꾸 사람들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당신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내가, 네가, 우리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인 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이타적인 존재일 수 있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그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보다 오히려 더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우리가 스스로를 이타적일 수 있다고 믿을수록, 그리고 내 행동이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하고 있다고 믿을수록, 그 믿음이 깨질 때 받아야 하는 ‘실망’의 크기는 한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나를 위해서 했든지, 너를 위해서 했든지, 너와 나를 모두 위해서 했든지 상관없이, 그 모든 행동의 목적이 나의 이득을 위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면, 보상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실망할 일이 줄어든다.
내가 한 일이 너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믿게 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너를 위한 희생으로 인식이 된다. 그 희생은 훗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함’의 권리로 변화된다. 그 일이 힘들었을수록 더욱더 강해진다.
고시 공부하고 있는 연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5년간 뒷바라지를 한 사람에게, 시험에 합격한 후 좋은 혼사 자리가 들어와 집안의 반대로 너와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미칠 듯이 화가 나고, 할 수만 있다면 상대를 죽여 버리고 싶을 것이다.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부정적 감정들 말고도 자신의 내부를 향하는 부정적 감정들도 생겨난다. 자신이 상대에게 해준 행동에 대한 후회와 사람 볼 줄 몰랐던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실망은 이후 커다란 자책감으로 번져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이와는 달리 남을 도운 행동조차도 오직 나를 위해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혹시라도 그것에 대한 보상이 되돌아올 때 ‘당연함’ 대신 ‘감사함’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나 좋자고 한 일인데, 그것에 대한 보상이 오는 것은 당연히 선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혹시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사소한 서운함이나 실망이 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그쯤에서 멈춘다.
이런 현상은 주식을 살 때와 비슷하다.
처음부터 자신이 산 주식이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산 사람과, 어디선가 얻은 고급 정보를 통해 반드시 크게 오를 것이라고 믿고 산 사람의 차이이다.
일반적으로 주식은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오르면 좋은 것이고 떨어지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손절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손해를 감수한 후 더 공부를 해서 다른 우량 주식을 사면 된다.
하지만 어디선가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면 무조건 오를 것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오르면 당연한 것이 되고, 반대로 떨어지게 되면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횡보를 하더라도 '오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오르고 있는 다른 주식들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떨어지고 있는 또 다른 주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렇게 생겨난 배신감은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그런 선택을 했던 과거 자신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야말로 과거로 돌아가서 그 주식을 산 자신을 마구 패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베푸는 수많은 선의는 주식을 사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마치 주식이 오르고, 횡보하고, 떨어지듯, 더 크게 돌아올 수도 있고, 준 만큼 돌아올 수도 있으며, 아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수하게 너를 위해서 했다고 믿으며 반드시 되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식이 투자이듯, 그런 선의의 행동조차도 결국 일종의 투자이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모든 투자는 반드시 손해의 위험을 품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왜 내가 한 투자만이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갈까?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했다고 해도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을 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계산법에 달렸다. 그 사람이 나라는 주식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판단이란 뜻이다. 그러니 만약 그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면 그것은 그저 그 사람은 내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기에 사지 않은 것일 뿐이다.
상대는 처음부터 내가 잘못된 주식을 고른 것이다. 그러니 그 상대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손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억울함에 사로잡힌 우리는 선과 악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관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주식 가격이 떨어졌는데 팔 생각은 안 하고 끝없이 주식만 욕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정말로 그럴 시간이 있다면 가능하면 빨리 손절을 하고 새로운 주식을 찾아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이 세상엔 우량주라고 부를만한 괜찮은 사람들이 꽤나 있으니까.
이토록 확실한 해결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억울한 마음에 사로잡힌 우리는 상대방을 끝없이 나쁜 것, 악한 것, 옳지 않은 것, 비상식적인 것, 은혜를 모르는 것, 사람 같지 않은 것이라며 비난하는데 자신의 시간을 다 쓴다. 처음부터 자신 역시도 그 자신을 위해서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사실 이런 배신감을 느끼는 현상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처음부터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정말로 상대방만을 위해서만 했다면 도대체 왜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할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오직 나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처음부터 ‘과도한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원래 어떤 주식이 오른다고 반드시 믿게 되면 재산을 다 털고 빚까지 내서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주식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복구 불가능한 손실을 입게 된다. 하지만 주식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그런 무리한 투자를 안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해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괜히 남들에게 무리해서 잘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만 해주고 만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를 잊을 수 있다.
우리는 원래 착하거나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하고 착한 존재라는 사실에 끝없이 집착을 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타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끝없는 비난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고 나서 받아 든 결과가 겨우 자신의 불행함이다.
왜 이런 믿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왜 그렇게 착함에 대해 집착을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