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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 간격

by 김민석 Feb 18. 2025

나는 가만히 앉아 멍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이곳 논산에 온 뒤로는 군데군데 시선을 잘 두게 되었는데 오늘은 마치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이 나뉘어 있다고 느껴졌다. 왼편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오직 기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굉음, 정면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는 고요한 이름 모를 풀 따위들이 바스락거리며 서로 비벼 대는 소리, 오른편엔 뻥 뚫려 있는데, 왠지 모를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고 차가운 바람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느껴) 졌다. 이 감각들은. 한 자리에서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이라 여겼다. 

 

 들뜬 기분 탓인지 ‘왠지 버스가 금방 올 것 같은 좋은 예감이야.’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차 간격이 40분인 정거장이었는데 버스에 탑승한 시간은 1시 15분이었으니 좋은 예감이 정확하게 빗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은 추위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뻤다. 그리고 버스에 탑승한 뒤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 내릴 곳을 미리 확인하였고 거진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도 알아낸 뒤 책을 펼쳤다. 그 책은 떠나기 전 카페에서 읽었던 것이 마지막이었고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나의 태도가 그날과는 매우 상반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며칠 전 느꼈던 겨울의 공기 또는 바람은 어딘지 모를 금이 가 있는 나의 뼛가루들을 건드려 아리게 했다면 이곳의 겨울 공기 또는 바람은 시원하게 들숨으로 들어오는데,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리게 했다. 며칠의 시간은 곧 몇 십 시간이다. 시간은 상대적임을 알고 있기에 이 며칠의 시간은 긴 시간일 수도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며칠의 시간은 내게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끼친 영향은 어떤 기준의 형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비되는 커다란, 아니. 무한한 우주 같았다. 알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낯선 지역에 떨어져 있는 것도 어떠한 우주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떠한 뜻은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난 뒤에 노트를 펼쳐 메모를 했다.


 2023년 1월 29일 2시 13분

‘첫 시내 방문하기 전 버스 안. 첫째로 윤활제를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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