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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거장

by 김민석 Feb 11. 2025

이런 류의 상쾌함이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언 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고, 그전에 누군가에게 라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근호가 생각이 났다. 전부터 외워 두었던 번호의 숫자들을 가볍게 툭툭 눌렀고 신호음은 길지 않았다.  


“여보세요?”

“응. 뭐 해?”

“참나, 어디예요?”

“나 여기 논산이야.”

“어이가 없고, 할 말이 없네요.”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은 뒤 이곳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생긴다면 이곳에 방문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근호는 큰 걱정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행 가기 전 자기와 술을 진탕 마신 것이 정신에 악영향이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자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지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과음을 해서 아직 술이 안 깼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 술을 마실 여유나 기회는 없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는 말을 반복했더니 “낯을 그렇게 가리는 양반이 운이 정말 좋았네요.”라며 놀려 댔다. 벅찬 마음을 쏟아내고 나니 금세 또 다른 곳으로 힘을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굳었던 몸을 이완시켰고 얼굴 근육도 이리저리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로 향한 뒤 의미 없는 찬물 세수도 마쳤고 노트와 책 만을 챙긴 뒤 문 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 때 문의 무게와 녹슨 정도가 잘 느껴졌다. 전부터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삐-걱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고 돌아오는 길에 기름칠할 윤활제를 돌아오는 길에 사오리라는 다짐을 하고서 계단은 두 칸씩 내려왔다. 빌라 현관물을 열자 찬 공기가 눈썹을 조금 더 무겁게 만들었으며 숨 쉬는 것을 조금 방해했다. 입김을 호호 불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을 몇 번씩 되새기면서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향했다. 아마도 첫날에 넘어온 곳의 반대방향의 도로인 것 같았다. 골목만 누비었던 탓에 오히려 단순해 보이는 찻길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 나갔는데 아무리 걸어도 정거장이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서의 감각이 익숙한 탓인지 더욱 길게 느껴지긴 했지만 도시에서 느꼈던 불쾌한 감각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노래도 흥얼거렸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한 뒤엔 목놓아 노래도 불렀다. 마이크가 주는 만족감은 없었지만 생생하게 내 귀로 돌아오는 어색함이 은근히 기분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두 곡 정도를 완곡하고 나서야 시야 안에 정거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아도 운행을 하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허름한 정거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곳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만남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처럼 심장이 뛰는 것 같기도 한 감정이 일렀다. 대충 보아도 오래되어 보이는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나와 시들어 버려 죽은 잡초들은 왠지 쓸모가 있어 보였고 녹이 슬어버린 정거장의 표지판과 의자는 오래된 영화의 세트장 같아 보였다. 버스가 언제 도착한다는 음성 안내의 스피커도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은 당연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의 바람소리는 빠르지 않았고 오히려 느린 바람 같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온도가 낮은 철 의자 위에 나는 조심히 앉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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