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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어쩌면 특별한.

by 김민석 Jan 14. 2025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젊은 남자는 우렁찬 인사말과 함께 나를 반겼다. 무슨 일이냐며. 나는 머쓱해하며 고개를 아주 살짝 떨구었다. 그리고 이내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대단한 말을 어렵게 꺼낸 것처럼. 그는 즉각 반응하였다. 그런 말은 됐다며 온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나는 더 이상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웠고 배도 많이 고팠기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아직 가게 영업 전이라 만들어 놓은 반찬을 꺼내 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 멀리 젊은 여자는 내게 묵례를 하며 옅은 미소도 보였다.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낯선 환경과 장소에서는 말 수가 적은 나였지만 젊은 부부가 베풀어준 호의로 풀어진 마음 때문이었는지, 밥풀이 튈 정도로 대화에 참여했다. 그럴 때면 잠시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금세 잊고 대화와 식사를 이어 나갔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냈으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고 과거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연인보다는 친구 같아 보이기도 하였지만,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부부였다. 어느새 나는 마음이 놓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이야기를 조금 발설했다.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이며, 사랑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하지만 생애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진 뒤 실의에 빠진 뒤 꽤 오랫동안 방황을 했던 것 같다고. 아니, 어쩌면 아직도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헤어지고 난 후의 짝사랑은 정말 힘겨웠다고. 결국 내 생애의 가장 큰 사랑이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고. 이러한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들은 아주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짧은 침묵을 깬 것은 젊은 여자였다. “그것 참 기쁜 일이네요.”라는 말과 함께였다. 내가 오해할까 우려한 것인지 한 마디 덧 붙였다. “그런 사랑을 경험한 사실 만으로도 참 기쁜 일 같아 서요.”에 이어 옆에 젊은 남자도 거들었다. “그래. 좋은 일이네유.”라며 구수하게 말했다. 나는 또, 또 고마움을 느꼈다. 따뜻했다. 나는 이렇게 고마울 일이 천지이구나 하며, 미안한 일도 마찬가지 구나, 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식사를 마쳤다. 나는 잊고 있던 통성명을 제안했고, 그들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놀라며 한진욱, 안유진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동수, 김동수라고 답했다.  


 통성명이 끝난 뒤 편해진 마음으로 일자리가 있는지 물었고 진욱 씨는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고맙다고 하였다. 먹은 값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거절했고 나는 말했다. “제가 어떻게 빚만 질 수 있겠습니까?”에 이어 “그렇다면, 시원한 커피 두 잔 사주십시오.”하였다. 정말이지 너무 분명한 성질머리다. 커피를 어디서 사 마시는지 물은 뒤 보란 듯이 달려 나갔고 문 밖을 나선 뒤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을 유심히 봐야 하기에. 숙소로 가는 길에서 첫 번째 골목이 나오면 오른쪽이라고 하였다. 골목을 돌아서자 가까이에 ‘카페 인 논산’이 있었다. 촌스럽기도 어쩌면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 그런 카페 이름이었다. 골목을 돌아 3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고, 문을 열었다. 유럽을 가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습득한 이미지가 정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기에, 유럽 그 자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사장님은 장발의 남성이었고 생김새는 평균적인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40대가 조금 넘은 듯해 보였지만 정확히 가늠하긴 어려웠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곧장 커피를 주문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아이스커피 세 잔 가져가려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어제 여행 왔습니다. 조금 이상하죠?”

 “아니요, 이상할 것 없습니다. 혹시 커피 원두는 어떤 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 원두요? 어… 혹시 옆에 김치찜 가게 사장님들 뭐 드시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럼요. 그럼 진욱 씨와 유진 씨가 드시는 두 잔과 고객님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럼, 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자리에 앉아 계세요. 준비되면 말씀드릴 게요.” 


 짧은 대화에서도 느껴지는 어른의 향기가 진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거나, 늘 상 잔잔한 호수일 것만 같은 그런. 나는 창가 앞을 잠시 서성이다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탁자 옆 의자에 앉았다.(다 비슷해 보였지만 묘하게 조금 더 오래되어 보였다) 카페는 어림잡아 열 다섯 평 정도 되어 보였다. 공간을 측정하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집 앞에 있는 카페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처럼 느껴졌고, 사장님이 열 다섯 평 정도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늠할 수 있었다. 탁자와 의자는 전부 어둔 갈색이었고 의자 또한 비슷하게 맞추어져 있었다. 흔히 말하는 엔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가구들 같아 보였다. 여러 비슷한 가구들 중에서는 책 선반이 가장 커 보였다.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 마저도 새것 같아 보이는 책은 없었다. 잠시 넋을 잃으면 21세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다시 둘러보니 곳곳에 식물들이 자기 자리를 잘 찾은 듯이 배치되어 있었고 여러 예술가 같아 보이는 인물의 액자들과 레코드판 테이프 등등도 여기저기 툭툭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비로워 보였던 것은 책갈피였다. 황동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책갈피. 엔틱 한 문양이었다. 어느 한 책에 꽂혀 있었는데 가서 볼 용기는 나질 않았다. 여하튼 책의 고정된 위 부분에 꽂혀 있었다. 가지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으며, 순간 훔칠까?라는 생각이 날 정도로 탐이 났다. 그 순간 음료가 나왔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흠칫 놀라며 부리나케 음료를 받으러 갔다. 사장님은 논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직접 만든 바나나 커스터드 크림을 직접 만든 바나나 빵 안에 넣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빵이라며 내게 주었다. 진욱 씨와 유진 씨는 많이 먹어봤으니 나 혼자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얼떨결에 받은 빵과 얼떨결에 뱉은 감사인사를 뒤로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코너를 다시 돌기 전 뒤를 돌아 카페를 한 번 더 눈에 담은 뒤 식당에 도착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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