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도살장 가는 길(2)

무작정의 시작

by 시크팍

수습기자로서 처음 경찰서에 들어갔다. 괜히 제재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영등포라인의 경찰서는 청사 로비까지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청사 내부에 별도 게이트가 있어서 인솔자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 다음 라인이었던 혜화라인부터는 청사 외곽에 게이트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한다. (게이트 때문에 대참사가 일어난다.)


영등포서 로비에 들어가 선배가 보내준 보고 양식을 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보고양식에는 타사보도, 소방보고, 마와리보고, 정보보고 등이 있었다. 타사보도와 소방보고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마와리를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타사보도는 선배에게 받은 양식에 여러 키워드가 있었는데 키워드 사이에 ‘|’ 기호가 있었다. 이전까지 상세검색을 활용할 일이 없다 보니 이 연산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몰랐다. 단순히 키워드를 구분하기 위함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입력한 단어를 하나 이상 포함해서 검색할 수 있는 검색 연산자였다. 이 사실을 모르다 보니 수십 개의 키워드를 일일이 하나씩 검색해 타사 보도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소방보고는 소방서 어디에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소방서 대표번호로 전화했지만 다른 부서로 전화가 돌려지기만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상황실에 문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전화했던 소방서에서는 한강 다리에서 일어난 수난사고 건을 인지하기도 했다.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17세 남성이 익사했다고 했다. 첫 보고부터 사고를 인지했으니 면피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하지만 보고 준비에 요령이 없다 보니 타사보도와 소방보고 준비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16시 보고는 소방확인도 전부 확인하지 못한 채 이뤄졌다. 보고를 확인한 선배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굉장히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


“너 왜 사람 하나도 안 만나?"

"영등포서 몇 시에 도착했어?"

"두 시간씩이나 있는데 사람을 한 명도 안 만나?"

"6시까지 돌고 보고해. 6시까지 사람을 만나라 사람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바로 동기에게 받은 연락망을 열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거나 만나주는 경찰이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초조해져 갔다. 누구라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서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처음이다 보니 누가 경찰인지, 누가 민원인인지 조차 알기 어려웠다. 무작정 아무에게나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민원인이었고 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지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 내용도 6시 보고에 올렸지만 선배는 민원인 말고 경찰을 만나라고 했다. 흡연구역 마와리도 실패하자 다시 무작정 형사당직실로 향했다. 당연히 출입증 없이 들어갈 수 없었다. 안에서 출입증을 목에 걸고 나오는 경찰이 보이자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했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아 제발 좀 오지 말라니까!"


오늘 처음 와서 인사라도 하려고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철저히 무시하며 지나갔다. 이 일로 한동안 형사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다. 영등포라인에서는 마와리를 돌며 형사팀, 강력팀은 잘 찾아가지도 않았다. 물론 나중에 적응을 하고 난 뒤 경찰은 '좋은 형님'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두 번째 라인에서는 지구대, 파출소는 가지 말고 본서만 돌라는 선배의 지시에 형사팀, 강력팀을 매일 찾아가며 친분을 쌓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6시에 또다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보고를 할 수는 없었다. 별관 건물에 들어가 무작정 아무 곳이나 들어가 노크를 하고 인사를 했다. 교통조사계, 교통범죄수사팀, 교통관리계를 돌았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간단하게라도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물론 경찰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도 몰라 인사를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정도였다.


그렇게 도살장으로 끌려간 첫날의 마와리가 끝나고 퇴근을 했다. 이날부터는 '무작정'의 연속이었다. 무작정 들어가고, 무작정 찾아가고, 무작정 연락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런 생활을 몇 주 하고 나니 어떤 일이 닥쳐도 무작정 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장착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국제부에서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장 모 동기는 마와리 일주일 만에 독기를 넘어 광기가 서린 눈빛을 보이기도 했었다.


퇴근시간이 지나자 동기들의 단톡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각자가 겪은 썰을 풀었고, 퇴사를 하고 싶다는 말도, 서로를 격려하는 말도 오갔다.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간 우리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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