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인데 기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잠시 조교생활을 했었다.
2017년 3월 일반대학원 법학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학위를 받는 것보다 취업이 우선이었기에 조교로 일을 하지는 않았다.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경찰행정법 관련 수업의 텀페이퍼 발표 날이었다. 교수님께서 학부 기말고사 감독에 들어와 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조교로 일하던 박사과정 형님이 학과사무실에 이야기하면 조교가 배치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한 번쯤 시험감독에 들어가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수락을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교수님께서는 술자리에도 불러주시고 다음학기 수업조교를 제안하셨다. 교수님도 좋은 분이셨고 조교 일 때문에 특별히 시간을 뺏기지도 않아 조교로 일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종종 술자리에 나를 데려가셨다. 혼자 사는 것을 아셨기에 학교에서도 항상 점심을 사주셨고, 저녁자리가 있을 때는 함께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분들을 소개받았다.
교수님과의 첫 술자리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서울예대 교수님, 연예기획사 대표 같은 사람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현직 경찰이 여럿 있었다. 교수님께서 경찰위원회 위원(차관급)도 역임하셨고 현직 경찰로 일하는 제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저녁자리에서는 현직 부장판사, 치과의사 출신 검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로스쿨 교수님으로 계신 분도 소개를 받았었다. 대부분 교수님 제자분들이었다.
당시에는 이분들에게 받은 명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탓이었는지,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받은 명함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휴대전화가 고장 나며 연락처를 모두 잃게 됐었다. 취업을 한 뒤에도 종종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이때부터는 교수님께도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그러다 MBN에 입사한 뒤 이삿짐을 싸며 잊고 있던 명함들을 찾게 됐다. 교수님과의 첫 술자리에서 뵈었던 경찰 형님들의 명함도 남아 있었고, 형님께 연락을 드려 교수님 연락처를 받았다.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니 기자가 된 것을 너무 축하한다며 좋아하셨고 저녁 자리에 초대해 주셨다. 장소는 교수님께서 처음 술자리에 초대해 주셨던 곳과 같았다.
날짜가 문제였다. 내가 도살장에 끌려간, 마와리가 시작된 첫날의 저녁이었다.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니 늦거나 오지 못해도 괜찮으니 편하게 참석하라고 하셨다. 다행히 이 날은 6시에 바로 퇴근을 할 수 있었고, 저녁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이 날도 참석하신 분들은 굉장한 분들이었다. 사회생활 4년 차, 그리고 이제 막 기자가 된 입장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분들이 자리에 계셨다. 몇 년 만에 연락을 드려 교수님 연락처를 여쭤봤던 형님도 계셨다. 2017년에 뵈었을 때는 경정이셨는데(당시에는 경찰 계급을 잘 몰랐다.), 이제는 총경이셨다. 이외에는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경찰 경비과에서 오래 근무를 하시다가 현재 보안업체에서 근무하시는 분, KBS에서 기자로 정년퇴직하신 분,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시다가 정당에서 일하시는 분, 그리고 대기업(건설회사) 사장님도 계셨다.
이제 막 마와리를 시작한 수습기자로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치안정감(경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 한 분이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올해 퇴임하신 이 분은 사회부에서 근무하던 당시 경찰청 국정감사 때도 현장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고, 나중에는 사무실로 직접 찾아뵙기도 했었다.
이 날 뵈었었던 분들 말고도 마와리를 돌며 대학원 때 뵈었던 경찰 형님께 연락드리고 식사 자리를 가지기도 했었다. 형님과는 대학원 때 학부생들을 인솔해서 갔던 동부구치소 견학도 함께 했었는데, 이렇게 연락을 주는 조교는 처음이었다며 좋아하셨다.
대학원에서 우연히 시험감독을 한 뒤 조교로 일했던 '우연'이 이렇게 모두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인연이 기자로 일할 때는 모두 취재원이 되었다. 취재원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취재원이 될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 취재원이 될 수도 있다. 기자가 하는 일은 이런 취재원을 늘려가고,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