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이거 맞아...?

문전박대 당하는 수습기자들

by 시크팍

마와리 이틀차.


보고 받던 선배는 영등포서-구로서-강서서-양천서 순서로 매일 다른 경찰서로 출근을 시켰다. 이 날은 구로서로 출근했다. 8시 첫 보고였지만 첫 날 보고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렸던 탓에 일찌감치 출근했다. 6시 반에 경찰서 민원인 대기실에 들어가 보고준비를 시작했다. 일찌감치 도착한 덕에 첫 보고는 무사히 마쳤다.


선배는 보고를 확인한 뒤 마와리를 돌라고 지시하며 지구대/파출소(이하 '지파')를 가도 된다고 말했다. 첫날 형사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던 탓에 연락망에 있는 과장들에게 문자를 남기고 바로 지파로 향했다. 네이버지도에 구로서 관내 지파를 모두 표시하고 최적의 동선을 짰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지구대에서 순찰팀 부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구로서 관내에서는 파출소 한 곳이 유난히 바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마와리 보고를 쓸 때는 이야기를 나눈 경찰의 소속, 계급, 이름, 연락처를 기재해야 했다. 경위 이상의 계급은 입직경로까지 경대, 경간부, 일반 출신으로 구분해서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경찰들은 쉽사리 본인의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처음 방문했던 지구대에서 부팀장이라는 것 외에는 계급, 이름, 연락처 모두 알려주지 않았다. 이름과 계급도 알아가지 못하면 선배에게 혼날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무 중인 경찰의 조끼를 강제로 벗겨 이름과 계급을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다음에 방문한 파출소에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막았다. 파출소장과 팀장이 부재중이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했다. 오후에는 들어오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오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오후에 다시 가봤을 때는 역시나 부재중이기 때문에 응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단순히 돌아가라고 안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걸어서 도착했지만 건물 밖으로 나를 밀어내고 문을 잠가버렸다.


기자가 잠시 안에 들어간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니 화가 많이 났다.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이 날은 하루종일 구로서 관내 지파를 돌았는데 5시에 마지막 보고를 하고 선배에게 말했다. 이 파출소 소장과 팀장이 교육이 끝나고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가서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추가 마와리를 돈 것이다. 선배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파출소를 찾아갔을 때 팀장이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찾아왔다는 직원의 보고에 팀장은 그저 손짓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또다시 밖으로 밀려나고 문이 잠겼다. 화가 난 나머지 문틈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뒤 입을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팀장님, 이름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팀장은 나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말해줬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거나 안으로 들여보내주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찾아올 테니 다음에는 꼭 이야기를 나누자고 소리치며 돌아섰다.


이 날은 지파를 돌며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아예 문을 걸어 잠구는 곳도, 안에는 들어갔지만 투명인간이 된 것 마냥 신경도 쓰지 않고 본인들끼리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와리가 힘들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자가 되겠다며 남들이 쉬는 퇴근 이후에도, 주말에도 공부하며 준비를 했었다. 이런 수모를 겪기 위해 그토록 고생했었나 현타가 왔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와리가 시작된 6월부터 마지막 11월까지 동기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이거 맞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동기들은 이 말을 반복했다. 마와리, 수습기간이 끝난 뒤에도 나는 속으로 이 말을 반복했었다.


물론 정말 따듯하게 반겨주신 경찰들도 있었다. 가리봉파출소의 한 직원분, 천왕파출소의 한 팀장님께서는 비도 오는데 여기까지 찾아왔느냐며 따듯한 커피도 내어 주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며 잠시나마 이야기도 나눠주셨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2시간 간격으로 보고를 하던 중 선배는 과제를 내주었다. 경찰서의 각 과에서 하는 업무를 파악해서 다음 보고 때 같이 올리라는 것이었다. 갈수록 비는 거세지고 지파간 거리는 멀었기에 지구대 한 곳에 가서 선배가 내준 과제에 대해 물어보고 인근 편의점에서 정리를 했다. 전부 파악하지도 못해 경찰로 근무하는 대학 동기에게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2시간 사이에 지구대 한 곳밖에 가보지 못하고 보고를 올렸다. 역시나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 두 시간 동안 한 사람 만난 거냐?"


선배는 두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조목조목 물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했지만 선배는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선배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을 해왔고, 경찰과는 얼만큼 대화를 나눴고, 보고 정리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전부 대답해야 했다. 그리고 선배는 다음 보고부터 최소 3곳 이상을 돌고 보고하라고 했다. 혜화라인에서는 지파를 지양하고 본서 마와리를 돌았기 때문에 운이 좋을 때는 두 시간에 5명 이상도 만나고 보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파를 돌면서 3곳 이상을 다니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3곳 이상을 돌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길이 막히는 것 같으면 비가 와도 다음 지파까지 뛰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차 마와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데 우산을 썼지만 온몸이 젖어 있었다. 비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생각했다.


'이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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