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모르는데 어떻게?
좌충우돌 첫 주말근무
수요일부터 마와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4일 차 근무는 주말이었다.
주말 출근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소처럼 8시 보고가 아니라 9시에 첫 보고를 올리게 되었고 이 날만 근무하면 하루를 쉴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주말 이틀을 모두 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하루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여유 있게 7시 30분쯤 양천경찰서에 도착했다. 양천서는 처음이었지만 주말인 관계로 보고를 올리고 바로 지파 마와리를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여유로워서인지 이 날은 모닝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금요일 퇴근 전 선배는 토요일 근무 때는 홍 모 선배에게 보고하면 된다며 미리 연락을 드리라고 했다. 연락을 드렸지만 선배는 별말씀이 없었고 아침에 단톡방을 파서 9시까지 보고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홍 선배가 1진으로 있던 혜화북부라인(이하 '혜북라인')에 배치되었던 동기가 같이 근무를 했는데, 혜북라인의 양식을 전달해 줬다. 영등포라인에서 쓰던 보고 양식과는 조금 달라 어색했다. 라인마다 보고 양식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타사, 소방을 확인하는 것도 손에 익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일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보고를 올렸다.
나와 동기들의 좌충우돌 주말 근무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홍 선배는 중부라인 정리는 누가 했느냐고 물었다. 이 날 출근한 수습은 총 3명이었고 영등포, 혜북, 강남라인에 배치되어 있었다. 총 4개의 광역라인 중 중부라인에 소속된 수습은 출근자가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라인, 광역도 아닌 본인이 마와리를 도는 라인에 대해서만 보고 준비를 했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출근자가 모든 광역라인을 커버해야 했다. 이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지시하면 해야 하고, 못하면 선배에게 깨져야 한다. 매일 느꼈지만 기자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었다.
선배는 10분의 시간을 추가로 주었고 나와 동기들은 각자의 광역라인 전체를 맡기로 하고 중부라인의 타사, 소방, 집시(집회시위) 보고를 빠르게 나눴다. 주말이었지만 동기들의 첫 주말근무에 대비해 모든 동기들은 깨어 있었고 곧바로 각자 라인의 타사 키워드, 소방과 경찰 연락망을 공유해 주었다. 나는 중부라인의 집시 보고를 맡았는데, 주말에 이렇게나 많은 집회가 벌어지는 줄 처음 알았다. 타사와 소방을 맡은 동기들은 빠르게 보고를 작성해 올렸지만 집시가 너무 많았던 탓에 나는 보고가 늦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선배는 재촉하기 시작했다.
"박인식 아직 멀었나?"
서너 줄 정도 치면 날아오는 선배의 카톡에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오타가 나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집시 보고를 채웠고 결국 첫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선배는 타사 보고에 올라온 화재, 교통사고 건을 제대로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여유롭게 출근해서 여유롭게 마와리를 돌다가 퇴근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무너졌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일보 수정과 사건확인 끝에 마와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틀 전 2시간 동안 최소 3곳 이상을 돌아야 한다는 선배의 지시가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타사, 소방을 확인해야 했다. 절대적으로 마와리를 돌 시간이 부족했다.
오전에는 경찰서에서 가까운 곳들을 빠르게 돌아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점점 지파 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동기 한 명은 날씨스케치 기사에 취재지원을 가게 됐다. 이제는 동기와 둘이서 4개 광역라인의 타사, 소방을 확인해야 했다. 지파 사이의 거리가 멀어 계속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 안에서는 보고 내용을 계속해서 정리했다.
오후에 한 번은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길이 너무 막혀 무작정 내려 뛰었다. 두 시간 동안 달랑 한 곳을 가본 게 전부였기에 단 1분이라도 다른 지파에 가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파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보고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정말 아무런 곳에 무작정 내려 뛰었기 때문에 길에는 편의점이나 카페는커녕 걸터앉을 장소조차 없었다. 어쩌겠나. 맨바닥에 주저 않아 노트북을 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준비를 했다. 다행히 홍 선배는 한 곳밖에 가보지 못한 것을 두고 혼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배는 총을 맞고 바쁜 와중이라 보고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동기들과 좌충우돌하며 마와리를 돌았고 하루가 끝났다. 일단 퇴근하고 있으면 전화를 주겠다는 홍 선배의 말에 퇴근길 발걸음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속으로는 '또 무슨 일로 트집을 잡고 혼내려고 이러나?'라고 생각했다.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선배는 그저 따듯한 격려와 응원의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잘못한 것도 없지만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난 것 같아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이 날 같이 근무한 동기들에게 연락이 왔다. 다들 홍 선배 전화를 받고 너무 따듯해서 놀랐다며 선배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가스라이팅이 어디 있나 싶다. 사실 홍 선배는 #얼음 땡 사회부! 편에서도 등장한다. 모니터링에 들어와 무게를 잡던 선배가 바로 홍 선배였다. 물론 그 순간 이후로는 장난도 치고 후배들에게 잘 대해주던 선배 중 하나였다.(가스라이팅?!) 그럼에도 홍 선배를 비롯해 기자들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몰라도 일단 해'라는 문화는 사람들에게 아직 퇴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