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껴보는 취재와 정보의 재미
지피지기.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이 말은 취재에서도 통한다.
마와리 셋째 날, 처음으로 강서경찰서에 가봤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에 올라타 보고 준비를 하며 이동했다. 경찰서 앞에 내렸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신축된 청사인데 건물이 깨끗하고 굉장히 컸다. 이틀간 봐왔던 영등포서, 구로서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서서가 영등포라인에서 마음의 고향이 될 줄은 몰랐다.
로비 휴게공간에서 준비를 하고 보고를 했지만 바로 마와리를 돌지는 않았다. 전 날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관악라인 쪽 정전 피해가 있었고, 선배는 이 건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역시나 선배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문의를 해서 어떤 내용을 알아와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경찰, 소방, 구청 등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지만 소방에서만 간단한 사고 개요를 들을 수 있었다.
알아본 내용을 보고하니 선배는 왜 이런 건 알아보지 않았느냐, 다음부터는 이런 것도 알아봐라 등의 이야기를 했다. 도제식 교육이란 시스템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경우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하고, 어떤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먼저 알려주고 추가적인 부분은 재량껏 확인할 수 있게 교육하는 건 안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그렇게 뒤늦게 마와리를 시작하게 됐는데 선배는 시간상 12시까지 돌고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추가적인 미션이 내려졌다. 아침에 보고를 올렸던 타사 보도 중 강서경찰서 관할 건이 있었는데, 마와리를 돌며 보도에 나간 프랜차이즈 업체가 어디인지 파악해 보라는 것이었다. 보도된 사건은 수사과 담당 사건이었다. 미션 때문에라도 수사 1, 2과장 중 한 명은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전화를 돌렸는데 다행히 수사과장 한 명이 오후에 시간이 되니 찾아오라고 했다.
약속이 잡혔으니 루틴대로 지파를 돌기 시작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지파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는데, 강서는 달랐다. 팀장, 소장들이 대부분 따듯하게 반겨주며 차도 내어 주었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간부가 편하게 대해주니 주변의 다른 직원들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날 처음 뵌 한 지구대 팀장님은 영등포라인에 있는 내내 근무에 맞춰 마와리를 돌마 찾아뵈었고 나중에는 밥도 사주셨다. 다른 라인 동기들에 비해 경찰과 밥약속을 잡으라는 압박은 덜했지만 선배의 압박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이 팀장님 덕분이었다.
너무 따듯하게 맞아주신 분들이 많아서일까. 보고시간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고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노트북을 펴고 보고를 쓸만한 곳이 없었다. 물론 나중에는 급할 때면 그냥 아무 바닥에나 주저앉아 보고를 쓰기도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노트북을 올려두고 쓸만한 곳이 필요했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들고 질주했고 한 병원 앞 화단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보고를 쓸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경찰은 만나면 이동하면서 보고 내용을 미리 휴대전화로 작성하는 습관도 들일 수 있었다. 나중에는 타사, 소방 보고도 이동하며 휴대전화로 적었다.
점심을 먹고 계속해서 지파를 돌았다. 돌다 보니 경찰서가 왜 큰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관할이 너무 넓고 컸다. 전 날에는 비가 왔어도 구로서 관내 지파를 대부분 돌아봤다. 하지만 이 날, 하루 만에 강서서 관내를 전부 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지파 마와리를 돌다가 수사과장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본서로 복귀했다. 복귀해서 보고를 정리한 뒤 미션 수행을 위해 타사 보도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수사과장을 만나더라도 무언가를 알아야 질문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S사에서 보도한 리포트 내용과 영상, 강서구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본사라는 힌트를 가지고 교차 검색을 했다. 그렇게 수사과장 면담 전에 어느 업체인지 특정을 할 수 있었다. 면담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 해당 업체의 법인 등기부도 열람해 봤다. 이렇게 획득한 정보를 가지고 수사과장 면담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해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으니 시답잖은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다 미션을 받은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수사과장은 본인 과 사건이 아님에도 기자들이 본인한테 전화를 많이 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사건에 대해 알고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미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는 듯 업체명을 이야기하고 등기부상 임원 변동 내역을 기억해 내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덕분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 이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선배도 연습 삼아 던져준 미션이었고 가져온 정보는 그다지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나니 뭔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보고 준비를 하며 이 맛에 취재하는구나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사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 과정은 이 날 내가 수사과장을 만나며 했던 일련의 행동의 반복이다. 기존에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며 또 다른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기삿거리를 포함한 모든 정보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상대에게서 무작정 정보를 얻으려 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나도 상대에게 가진 패를 어느 정도 보여줘야 상대도 패를 보여준다.
짧지만 기자생활을 해보며 드라마 <피노키오>에 현실 반영이 잘 된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경찰과 유대감을 쌓지 못한 기자들은 경찰을 찾아가 팀장님, 형사님이라고 호칭한다. 하지만 쉽게 경찰들과 친해진 주인공은 경찰은 '형님'이라고 부른다. 현실도 비슷하다. 사내교육 당시 지금의 사회부장은 경찰을 '좋은 형님'이라고 불렀고, 다른 선배들도 우리에게 경찰을 '형님'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마와리를 돌며 진짜 친해진 경찰들과는 막역한 형동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피노키오에서 주인공에게 어떻게 빨대(취재원)를 쉽게 만들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벌칙으로 파쇄된 문서들을 맞췄는데 거기에 경찰서에 관한 정보가 많았고, 정보를 가지고 덤비니 빨대도 쉽게 만들어졌다고 대답한다. 그저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자 생활을 해보며 실제 기자들이 어떻게 정보를 얻고, 취재원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쓴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와리 3일 만에 나름대로 정보를 얻는 방법을 터득했다. 지옥 같은 마와리 속에서도 정말 보잘것없는 정보일 수 있어도 취재와 정보의 재미도 느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선배들은 마와리를 돌며 정보보고를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보보고를 만들어 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이때도 지피지기 공략법을 잘 써먹었다. 이런 재미들을 하나씩 느껴가며 아무리 힘들어도 기자가 천직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