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도살장 가는 길(1)

마와리, 5개월 여정의 시작

by 시크팍

2022년 6월 22일 수요일, 악명 높은 마와리가 시작됐다.


예정된 3주간의 사내 교육을 마친 뒤 사회부 사건팀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와 동기들은 생명연장의 꿈을 이뤘다. 사내교육을 담당했던 간사 선배 덕에 이틀간 교육이 연장되었다. 기쁜 마음은 잠시였다. 곧 마와리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그렇게나 밝았던 동기들은 점점 우울해져 갔다.


결국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마와리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 날은 회사로 출근했다. 교육간사 선배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배치된 사회부로 갔다. 당시 사회부장, 지금의 사회부장인 당시 사회부 차장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회의실에 방치됐다. 폭풍 전야 같은 적막 속에서 동기들은 각자 확보한 경찰서 비상 연락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연락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경찰과 면담 약속을 잡기 위해, 타사 보도 건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연락망은 필수였다. 원래 연락망은 출입기자들에게 배포가 되지만 동기들은 타사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망을 수배해 왔다.


우리의 마와리는 오후부터 시작이었다. 캡과 점심을 먹고 각자 배치된 라인으로 뿌려질 예정이었다. 식당에서 각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캡은 맥주도 한잔씩 하라며 권하셨지만 동기들 모두 자신들의 미래를 예견한 듯 밥도, 술도 잘 먹지 못했다.


식사 후 카페에서 캡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동기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 했다. 조금이라도 마와리를 늦추기 위함이었다. 동기들은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이들 같았다. 우울함과 긴장감이 표정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심각할 정도로 침울해하는 동기들을 위해 나는 괜스레 장난도 치고 엽기적인 표정이나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실 나도 걱정이 되고 두려움, 우울함 등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지만 조금은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이라고 해도 이제 기자로서의 첫 관문에 들어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설렘은 오후가 되며 바로 사라졌다.) 직군은 다르지만 세 번째 직장이었던 만큼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태연함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동기들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티타임이 끝난 뒤 캡은 자리가 끝났다고 1진들에게 이야기하겠다며 서울청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충무로역 근처에서 선배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동기들은 하나둘씩 배치된 라인 2진 선배에게 전화를 받고 지시받은 경찰서로 향했다. 대부분 택시를 이용했는데 첫 라인을 돌 때까지만 해도 마와리를 돌며 택시를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부 회사들은 마와리를 돌 때 택시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작고 소소한 수습기자 월급이 전부였다. 그래서 점차 적응하게 되며 가급적 택시는 이용하지 않았다.


나는 동기들 중 가장 늦게 선배 전화를 받았다. 첫 라인은 영등포라인이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선배 목소리는 정말 무뚝뚝했다. 통화 내용도 정말 간결했다.


"너 영등포라인이지? 영등포경찰서로 지금 이동해. 이동해서 마와리 돌고 4시까지 카톡으로 보고해."


이 말만 남긴 채 선배는 전화를 끊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와리는 어떻게 도는 것이며, 보고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어머니, 난 이 괴상한 세상에 왜 온 걸까요?"라는 드라마 <피노키오>의 대사가 떠올랐다.


카카오택시를 불러 영등포경찰서로 향하던 중 선배가 초대한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 광역 영등포라인에는 3명의 수습이 배치되었는데, 이 모 선배에게는 나와 다른 동기 한 명이 보고를 하게 됐다. 선배는 세 명이 있는 단톡방을 만들어 보고 양식을 보내주고 양식에 맞춰 4시까지 개인톡으로 보고를 하라고 했다. 이동하는 내내 보고 양식을 봤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덧 택시는 영등포경찰서 앞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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