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크팍 Jan 19. 2024

나의 수습일지 #항의 전화

피할 수 없는 기자의 숙명?

9월 첫 출근 날이었다. 어김없이 종로경찰서로 출근했다. 집회의 성지 종로답게 여러 집회와 기자회견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제 이런 일정들을 확인하는 것도 내 몫이 됐다. 뼈 선배는 일보를 올리면 주요 일정 중 확인이 필요한 일정을 선별해 줬고 나는 각 단체에 연락해 보도자료를 받고 세부 내용을 확인했다.


이날도 두 건의 일정을 확인해서 보고한 뒤 마와리를 돌았다. 평화롭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뼈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입봉 기사 관련해서 문의가 온다고 들었다며 또 연락이 오거나 하면 선배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사실 전날 저녁에 메일을 하나 받았다. 본인의 사진이 무단으로 입봉 기사에 사용되었고, 기사 내용이 잘못되었다며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피해자분께 사진과 영상을 제공받을 당시 입수 경로도 확인했고, 기사가 나가기 전에 선배가 기사 내용에 대해 경찰서에 확인 절차도 거쳤다.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메일을 보낸 항의자가 회사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밥을 먹고 나니 바이스에게도 전화가 왔다. 자료를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받았는지,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물으셨다. 피해자들이 모은 자료였는데, 자료를 공유하며 피해자들은 언론에도 알리고 같이 활용하는 데 동의를 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피해자에게 다시 확인해서 보고하기로 했다.


통화 후 보고를 하니 바이스는 문제 될 소지는 없어 보인다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기사 책임은 결국 취재한 기자 스스로가 지는 것이라고 본인이 계속 이야기했던 이유도 설명했다. 보고를 받은 캡도 정당하게 제보자에게 자료를 제공받았고,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도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항의자에게 연락이 와도 취재원 보호 때문에 제보자가 누구인지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하라고 하셨다.


뼈 기자에게도 상황을 다시 보고했다. 캡 지시에 따르라고 했다. 항의자가 본인 사진이라고 주장하는 부분도 기사에서는 전부 블러 처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뼈 선배는 항의자에게 연락이 오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이런 항의를 받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입봉에 취해 상승곡선을 그리던 감정이 3일 만에 급락했다. 조금 더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니 뼈 선배는 이런 일로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이 있을 거고 대처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한참 뒤에 뼈 선배와 술자리를 하며 이날 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규모도 크고 복잡한 사건으로 입봉 해서 그런 항의를 받았던 것 같다며 입봉은 선과 악이 명확하게 영상에 드러나는 단순 절도가 가장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획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뼈 선배를 강사로 초빙한 적이 있다. 선배는 강의에서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만큼 기사 때문에 항의 전화를 종종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사회부는 기사를 쓰고 이런 항의를 받을 일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주의해서 기사를 쓰고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항의를 받으면 기자들도 마음이 좋지 않다.


점심을 먹고 항의에 대처하며 한 시간을 넘게 시간을 썼다. 선배는 다시 5시까지 마와리를 돌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 마와리를 돌았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시청자상담실에 항의자가 전화를 한 것이다. 기사를 쓴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남겼다고 했다. 뼈 선배에게 보고하고 캡과 바이스가 말씀해 주신 대로 항의자에게 전화해 대응하기로 했다.


항의자와의 전화는 쉽지 않았다. 항의자는 자료 제공자를 색출하려고 했고, 나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절대 불가함을 알렸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며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항의자는 전화를 끊기 전에 자료 제공자를 알려주던지, 본인을 구제해 줄 대책을 세워달라고 했다. 다음날 정오까지 연락이 없다면 회사로 찾아와 난동을 피우겠다고 했다.


보고를 받은 뼈 선배는 잘 대응했다며 본인이 바이스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항의자와의 통화 때문에 마와리 보고가 늦어졌다. 뼈 선배는 항의에 시달린 내가 신경 쓰였는지 괜찮으니 정리가 다 되면 보고해 달라고 했다.


일단 보고를 마치고 퇴근했다. 캡은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뼈 선배를 통해 다시 알려주셨다. 제보자도 항의자와 연락을 원하지 않고 항의자의 주장만 듣고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항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기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오면 수신차단을 하라고 했다. 메시지를 남기자 곧바로 전화가 왔다. 캡의 지시대로 수신 차단을 했더니 이번에는 카카오톡 전화가 왔다. 카톡 역시 차단을 했다. 아직까지 내 카카오톡에서 유일하게 차단되어 있는 사람이다.


뼈 선배는 저녁에도 별일 없을 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을 시켜줬다. 바이스도 다음날 또 항의자에게 연락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냐며 신경 써줬다. 일단락이 되었지만 항의에 시달리며 기분이 좋지 않은 하루를 보내니 너무 고단했다. 집 근처 국밥집으로 향해 조용히 앉아 소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쳤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327610909

작가의 이전글 나의 수습일지 #가용인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