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맞다: 본인이 발제한 아이템이 아니라 위에서 지시한 아이템으로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보도자료가 배포되거나 타사에서 보도한 기사를 따라갈 때 총을 맞게 된다.
입봉 한 날 저녁, 뼈 기자 선배는 다음날 7시 45분까지 삼각지역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전장연의 삭발식과 탑승 시위가 있는 날이었다. 입봉 한 기쁨에 사회부 장 기자(전 국제부)와 저녁을 먹으며 술도 마셨고, 이날 아침은 비까지 내려 출근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삼각지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 탓에 대합실 곳곳에는 빗물에 젖은 발자국이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타사 보도와 집회시위표를 정리했다. 보고가 늦어져 지적을 받았지만 선배는 집회시위를 챙기는 방법을 알려줬다. 선배가 알려준 대로 삭발식 겸 기자회견 발언을 노트북으로 받아 적었다.(흔히 ‘워딩을 푼다’라고 한다.)
종로, 중부라인은 집회시위나 기자회견이 많아 워딩을 풀 일이 많았다. 의료원에 근무할 때는 계약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타자를 빠르게 치기보다 꼼꼼하게 검토하고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람이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려 하니 금세 손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종로라인에서 마와리를 돌며 친분을 쌓은 뉴시스 기자가 있었다. 금융노조 집회 때 같이 현장에 나갔었는데 700타를 치는 이 친구도 워딩 풀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삭발식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탑승 시위가 시작됐다. 직접 탑승 시위 현장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전동 휠체어가 위협적이었다.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철판으로 둘러 개조된 형태였다. 일부 시민들은 탑승 시위를 진행 중인 활동가들에게 불만을 호소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경찰들은 시민들과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뼈 선배는 가까이 가거나 개입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라고 했다.
탑승 시위가 끝나고 라인으로 복귀했다. 어김없이 종로경찰서였다. 신당역 살인사건 전까지는 종로에만 있어야 했다. 도착하니 선배는 사건 개요를 보내주며 단신을 써보라고 했다. 입봉 전후로 선배들은 리포트나 단신 쓰는 연습을 종종 시켰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마와리를 돌라는 지시를 받았다. 입봉 준비를 하며 일주일 정도 마와리를 제대로 돌지 않았더니 너무 막막했다. 다시 마와리를 돈다는 소식에 정치부 김 기자(전 전국부)는 전 날 나간 리포트를 캡처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세 번째 회사인 MBN에서는 동기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렸다. 실제로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있는 편이었는데, 막내와는 8살 차이가 났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동기들은 나를 부장님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루를 버티고 퇴근시간이 됐다. 뼈 선배는 라인 일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나중에 실제 라인에 배치되면 주요 일정을 정리해서 보고해야 한다며 참고할 사이트 리스트도 넘겨줬다. 이제 입봉을 해서 가용인력이 되었으니 참고하라며 보도 정보 시스템 사용법 자료도 보내줬다.(여기서 말하는 가용인력은 언제든 총 맞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구성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음날은 평소와 같이 출근해 마와리를 돌았다. 오전 마와리를 돌다가 우연히 보이스피싱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뼈 선배는 오후에 이 사건을 취재해보라는 지시를 했다. 구체적인 사건 개요를 알지 못했지만 몇 가지 단서로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서촌과 사직동 일대를 휘젓고 다니며 알아봤지만 사건에 대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취재 상황에 대한 중간보고를 했을 때 선배는 말했다.
“네가 판단했을 때 이거 취재해서 리포트 갈 수 있을 거 같아?”
선배는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사실 무언가가 더 나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는 수습이었다. 피해자를 찾게 되면 사건 내용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고 범행 장소 특정해서 cc도 딸 수 있을 것 같다며 더 알아보겠다고 했다. 일단 선배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왔을 때 선배는 연습 삼아 보낸 것이라고 말해줬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사건은 워낙 자주 발생하고, 보도도 많이 나갔었기 때문에 새로운 범행 수법이 드러나는 등 특이점이 없으면 리포트를 가기 힘들다고 했다.
이날 퇴근할 때 선배는 cctv 영상과 연합뉴스 기사를 보내줬다. 다음날 출근하면 직접 리포트를 쓰고 보도 정보 시스템을 써보는 연습을 해볼 거라고 했다. 선배가 말한 대로 가용인력이 되었으니 빨리 적응하고 실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았다.
빨리 입봉 한 덕에 선배들의 배려를 많이 받았다. 기사를 쓰고 시스템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기는 했다. 그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낯설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나는 비교적 1, 2진 선배들이 차근차근 연습도 시키고, 한 번씩 기사를 쓸 때마다 꼼꼼하게 봐주며 알려줬다.
나중에 동기들이 우후죽순 입봉 한 뒤로는 이런 배려를 받기 쉽지 않았다. 선배들도 각자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며 후배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가용인력이 1명일 때야 돌아가며 여유 있게 봐줄 수 있었겠지만, 9명으로 늘었을 때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