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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팍 Dec 28. 2023

나의 수습일지 #단독 입봉

엄마 나 방송 탔어!


8월 29일 드디어 진짜 입봉 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중부라인 2진 뼈기자 선배도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1, 2진 선배와 나 이렇게 셋이 들어간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선배에게 기사를 출고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며칠 새 계속 입봉에 다가왔다 생각했지만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입봉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밤사이, 혹은 기사를 준비하던 중에 타사에 물을 먹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래도 방송기자로서 처음 카메라에 서는 날이었다. 긴장도 되고 설레었다. 금요일 퇴근하며 넣어두었던 정장과 넥타이를 다시 꺼내 준비했다.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카메라 테스트를 준비할 때 샀던 쿠션도 함께 챙겼다. 보통 스탠딩을 할 때는 따로 화장을 하지 않는다. 처음이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출연이나 큐브 기사가 잡히면 분장실에서 따로 화장을 해주고 의상도 준비해 준다.)


김 선배는 아침부터 지시와 질문을 쏟아냈다. 부장의 지시대로 내가 리포트를, 선배는 출연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선배도 사실관계를 더 자세하게 파악해야 했다. 피해자와 전문가 인터뷰도 준비해야 했고, 피의자들이 사용했던 사무실 공간이 있던 곳에 찾아가 추가 취재도 진행해야 했다. 선배는 지난주 내가 써놨던 기사도 꼼꼼하게 수정해 줬다.


캡은 지난주 혐의가 보다 명확히 입증되기를 바라며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확인해 보자고 하셨었다. 이날 기사를 출고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하고자 선배도 영장에 대해 몇 차례 확인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간의 취재 내용을 토대로 선배는 최종 발제문을 보내주며 팩트체크를 지시했다.


선배는 아침에 지시를 내리며 점심을 사주겠다며 중부서로 오라고 했다. 오전 취재를 마무리해갈 때쯤 선배는 중부서가 아닌 회사로 오라고 했다. 부장이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고 했다.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부장과 선배를 만났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냈는데 두 사람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밥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셨다. 여유로운 두 사람 앞에서 나는 계속 초조했다. 아직도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오후에도 일정을 나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두 사람은 여유가 있나 싶었다. 회사로 들어간 뒤 바로 일정을 나갈 채비를 했다.


의뢰를 올릴 때 수습 입봉이라고 표기를 했었다. 입봉작이다 보니 영상취재 선배도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줬다. 이제는 피의자들이 쓰던 사무실은 흔적조차 없었지만 선배는 360도 카메라로 건물 내부 스케치도 챙겨줬고, 힘들게 반대편 건물로 올라가 부감도 챙겨줬다.


취재 일정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바이스에게도 연락이 왔다. (손 내려와 밥을 먹어라의 그 바이스가 맞다.) 사건이 어렵다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김 선배가 수정해 준 리포트도 바이스가 다시 수정하며 기사 내용에 틀린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게 했다. 스탠딩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려주셨다. 기사를 수정한 바이스는 말했다.


“기사는 네 이름으로 나가고 향후 소송에 휘말려도 네가 책임진다. 제대로 봐라.”


바이라인에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사인 만큼 책임도 내게 있다는 말이었다. 1진 선배의 지시, 바이스의 지시, 영상취재 선배와의 소통을 동시에 하며 정신없던 와중에 아찔해졌다. 다시 한번 기사를 들여다보며 팩트체크를 했다.


바이스는 내가 질문에 답하는 내용과 현장에서 취재해 보고하는 내용을 토대로 계속해서 기사를 수정해 갔다. 그렇게 기사가 완성되고 스탠딩 멘트도 결정됐다. 피의자들의 사무실이 남아있었다면 사무실 앞에서 스탠딩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사무실이 입점한 관계로 경찰서 앞에서 스탠딩을 해서 클로징으로 쓰기로 했다.


경찰서로 이동하던 중 바이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타사에서 취재가 들어온 것 같다며 단신으로 먼저 기사를 내야 하니 바이라인(이메일)을 달라고 했다. 단신은 바이스가 직접 써서 내보내줬다.


그렇게 정신없이 경찰서로 이동해 스탠딩을 준비했다. 영상취재 선배는 스케치를 먼저 하고 있을 테니 스탠딩 준비가 되면 말해달라고 했다. 선배가 스케치하는 동안 멘트를 외우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준비를 마쳤다. 선배는 와빠(핸드마이크)를 건네고 자세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선배의 큐사인이 떨어졌다.


말문이 막혔다. 큐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멘트를 완벽히 외웠다고 생각했다. 그다지 긴장도 되지 않았고 그저 빨리 기사를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큐사인이 떨어지니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멘트를 보고 외웠다. 다시 스탠딩을 해봐도 계속해서 NG가 났다. 멘트를 계속 틀리니 긴장도 심해졌다.


내가 점점 긴장하는 걸 눈치챈 선배는 수십 번을 틀려도 괜찮으니 편하게 외워서 하라며 나를 진정시켰다. 결국 10번을 넘기기 전에 스탠딩에 성공했다. 긴장을 해서인지 숨이 찼다. 실제 방송에 나간 스탠딩을 봐도 멘트를 하며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인다.


일정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데 김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사실 연락은 하루 종일 계속하고 있었다.)


“인식아... 기사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편집에서 아직 그림도 안 들어왔다며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취재지원을 하며 인제스트를 하는 방법도, TC를 잡는 것도 배웠지만 여전히 서툴렀고 무엇보다 기사를 마감하며 언제까지 이런 작업을 마쳐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이때 뼈기자 선배가 등판했다. 그동안 내가 입수한 영상들 인제스트를 해주고 전문가 인터뷰 워딩도 풀어줬다.


회사에 들어가니 내 기사에 여러 선배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리포트 하나를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작업이 필요한데 여러 의뢰 작업들, 인터뷰 tc, dve 확인 등 뼈기자와 본서 집착남 선배가 도맡아 해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일단 더빙부터 하자며 본서 집착남이 더빙실로 안내했다. 카메라 테스트를 준비하며 워낙에 더빙 연습을 많이 했기에 순조롭게 더빙을 마쳤다.


사회부로 돌아가니 부장이 다시 더빙실로 가자고 했다. 처음인데 더빙을 어떻게 했는지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더빙실에서 녹음파일을 들어본 부장은 말했다.


“처음 치고는 잘했네.”


이날 기사가 나간 뒤 캡도 따로 연락을 주셔서 처음 치고는 더빙이 좋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다시 사회부로 돌아가 앉아 있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본 본서 집착남은 편집실에 가서 영상이 붙는 걸 같이 보면 좋다며 편집실로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편집 선배가 작업하는 것을 옆에 앉아 지켜봤고 편집을 마친 뒤 다시 사회부로 갔다.


본서 집착남은 서버에 올라온 리포트 영상을 보여줬고 그래도 입봉인데 회사에서 모니터를 하고 나가자고 했다. 내 리포트가 나가기를 기다리며 드디어 밀린 카톡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끄럽던 동기 단톡방, 스탠딩을 잡기 위해 경찰서로 향할 때쯤 동기들에게도 입봉 한다는 사실을 알렸었다. 입봉 소식에 동기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마침 동대문경찰서 마와리를 돌고 있던 막내 조 기자는 스탠딩을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단톡방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조 기자는 타사를 돌리다 찾은 내 온라인 단신 기사를 단톡방에 공유하기도 했다.



몇몇 지인들에게도 입봉 사실을 이야기했었다. 회사에서 모니터를 마치고 나오니 생방송으로 봤다며 인증 영상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선배들의 축하 인사도 이어졌다. 이전 라인에서 보고를 했던 선배들,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선배들도 연락이 와서 입봉을 축하해 줬다. 그리고 오후 내내 시달리게 했던 바이스도 방송에 나간 스탠딩 영상을 캡처해 보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다. 단독 입봉 축하하네.”


나도 여러 선배와 바이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바이스는 초심을 잃지 말라며 사회는 내가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또 사건을 물어오라는 독려(?)도 잊지 않으셨다.


회사 앞에서는 혜북라인 마와리를 같이 돌았던 사회부 장 기자(전 국제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입봉 했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며 내가 모니터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장 기자와 을지로에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전화와 카톡으로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마음 졸여오던 그간의 시간이 한순간에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취재원들에게도 감사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를 끝냈다.


그때는 몰랐다. 이 기쁨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686477?type=journalists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686508?type=journalists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30576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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