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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팍 Dec 21. 2023

나의 수습일지 #똥줄

물먹으면 어떡해?

입봉이 예정된 날 아침이 밝았다. 원래대로라면 오후 출근을 해야 했지만 일찍이 나가 리포트를 써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캡이 수사 진행 상황을 물으셨다고 했다. 확인해 드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2시간 뒤 선배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캡이 추가로 확인해 보면 좋겠다고 하시네.”


선배도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며 우선 발제는 안 하기로 얘기가 됐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고 다시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었다. 이 사건까지 킬 되면 다시 새로운 사건들을 찾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며 전날 꺼내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챙겨 출근했다.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커뮤니티를 통해 또 다른 피해자와 연락이 닿았다. 인터뷰에도 응해주기로 했다. 출근해서 선배에게 바로 보고한 뒤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선배는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추가로 취재가 필요한 부분을 짚어 주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기도 했고 사기 건이다 보니 혐의가 명확한지, 피의자들에게 고소가 들어오면 우리가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지를 캡께서 분명히 하고 싶어 하셨던 것이다.


추가 취재를 이어가며 선배는 취재지원도 지시했다. 전 날에는 선배 기사에 들어갈 인터뷰 워딩을 풀고 TC를 잡는 일을, 이날은 CG를 의뢰하는 일을 하게 됐다. 사실 말이 취재지원이지 선배에게 기사를 쓸 때 보도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갔다.


취재원을 통해 캡께서 짚어주신 내용들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타사 기자들도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계속 찾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에게 보고하니 빨리 털어야겠다고 했다. 점점 초조해져 갔다. 타사에서 먼저 보도가 나가면 단독이 아니기 때문에 입봉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시간은 저녁 6시를 넘겼다. 메인뉴스가 7시이니 이날 입봉은 물 건너갔다. 캡은 여전히 고민하고 계셨다. 아직 피의자들이 입건만 되고 구속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어 피의자들이 구속된다면 보도 이후 후폭풍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배는 나보다도 이 사건 보도와 내 입봉에 의지를 보였다. 캡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지만 잘 이야기해서 다음 주에는 기사를 털어 버리자고 했다. 주말부터 캡은 휴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결국 선배는 캡에게 이야기해 기사를 출고해야 할 상황이 되면 부장과 직접 이야기해 기사를 털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선배는 다시 필사와 더빙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이날은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시켜 주셨다. 이날 입봉 하지 못한 아쉬움, 주말 사이에 타사에서 보도가 나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다음 주에는 그래도 입봉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술을 한잔하고 집으로 향했다.


종로라인 첫 주에는 주말 근무가 없었다. 여전히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서 타사에서 보도가 나가지 않았을까 수시로 검색해 보며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 늦은 저녁, 월요일부터 오전조 출근이었기 때문에 일보에 올릴 집시표를 치고 있었다.(사건팀 기자들은 매일 예정된 집회시위 일정표를 입수하고 각 라인별 일정을 정리해 일보에 함께 올려야 한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김 선배에게 카톡이 왔다.


“인식,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답 안 해도 되고 내일 출고하자.”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996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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