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 경험과 생각일 뿐이지만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면?
상사가 그런다고 해도 그렇지만 후배가 그런다면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게 뭔가 숨기는 걸까 내지는 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의사표시인건가, 아니면 뭔가 불만이 있는 걸까 싶어 서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랬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봤다.
내가 저 정도 연차에 팀원들과 회의할 때 어떠했을까를 상기시켜보기도 했다.
과거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이유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말을 시킬까봐 두려워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불만이 있거나 상사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을 경우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냥 고개만 푹 숙인 채 메모를 하는 시늉을 했다. 거의 무표정에 가깝게 말이다. 그런 경우 필시 다른 동료들 역시 그런 분위기로, 회의에 참석해 질문을 받아도 거의 입은 열지 않는 상태였다. 상사라고 다 능력이 출중한 건 아니었으니깐, 무슨 또 이상한 소리를 해서 힘들게 할까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출처: 펙셀
나와 일하는 후배들은 내 능력따위를 무시하거나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착각일 수 있겠지만 하여간 느낌은 그랬다. 이상한 방식으로 일을 해서 곤혹스럽게 한 경우도 없고, 과도하거나 기상천외한 지시사항으로 괴롭힌 경우도 없으므로. 그럴 거라 믿었다.
내가 물어본 질문에 다른 동료들의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후배들을 종종 봤지만,
내가 물은 질문에 나를 보고 답히지 않고 왜 다른 동료의 눈을 보고 답하는 걸까가 궁금했지만, 결국 주변에 내 말에 동조를 해달라는, 상사가 어떤 말을 해도 너는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라는 걸 눈빛으로 교환하는 거라고 일축했다. 물론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가 혹시 불편해질까 말을 하면서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도 보였다.
"자, 000 대리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 ***대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난 묻는다.
그러면 일단 나를 먼저 보고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의 눈을 보고 답을 한다.
내가 질문했는데 왜 저 친구 눈을 보고 답을 하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들지 않거나 내 생각에 네가 지원사격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무언의 눈빛 교환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얼마간의 생각을 거친 눈빛을 받은 이가 도와주는 발언을 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나를 보고 답을 하지 못하는 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져만 갔다.
어떤 경우는 질문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회의이라는 건 결국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리스크를 덜고 최적의 방법과 의미를 도출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과정 아니겠는가. 각자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정답을 갖고 있다면 왜 회의를 하겠는가.
마감시한이나 홍보방식, 섭외대상, 콘셉, 행사장 배치, 참석자 초대 등등 모든 게 결국 방향을 공유하고 적합한 걸 찾는 과정이다. 다른 프로젝트와 중복되어 성과를 반감시킨다면, 어느 한쪽은 마감일정을 다소 미루거나 당기거나 조정할 필요가 있고,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은 함께 나누기도 하고, 방향을 잘 못잡고 이는 동료가 있다면 방향을 공유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은 위험성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질문의 방식을 이렇게 바꿔보기도 했다.
"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봅시다."
그렇지만 아무도 자유롭게....라는 말은 주목하지 않고... 말을 하라는 거에도 쉽사리 반응않는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상대의 업무에 대해 사족을 달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주알고주알한다는 인식을 심어줄까봐 그냥 뒤로 빠져있는 게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며, 여러분들 의견은 결국 한곳으로 모이는 거라며 의견을 독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000 대리가 이렇게 하자고 했고 이것의 핵심은 이거다. 여러분들 일정, 방식, 홍보 방식 등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성과를 기준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하나하나 의견을 말해봅시다.
알정 데드라인이 4월 29일인데, 적합하다고 보나요? 적합하지 않다는 분?"
이렇게 구체적으로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회의진행을 바꿔보기도 했다.
그제서야 하나둘 의견을 말하지만 단답형이다. 생각이 반영된 답이라기 보다는 나는 4월 29일 상관없을 것 같다는 식이다. 4월 29일에 하면 분명 차질이 있는데 아무도 그 일정을 변경하자는 말이 없자 절망에 가까운 실망을 느낀다.
결국 나는 끄트머리에 가서 하면 안되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하고야 만다. 듣기 좋게 말하지만, 결국은 깊이 있게 생각하라고 강변을 하고 있다.
그런 몇번의 과정을 거치며 어느 순간, 아! 뭔가 갑자기 깨달음 같은 게 스쳤다.
오래전 나도 생각이나 의견을 말했다가 상사의 어처구니 없어하는 눈빛부터 읽곤 너무 주눅들고 곤욕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후배들은 벌써, 아까, 어처구니없어 하는, 그러니깐 절망에 가까운 내 눈빛을 읽은거였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 거였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였고, 후배들은 지금 내게 불편함을 느끼는 거였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하게 하기 보다는 마음을 쪼그라들게 하는 방법론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졌다. 내가 말하는 방식이 정곡을 짚어서 매몰차게 몰아치는 데다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눈을 보지 않는다는 건 필히 상처받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렇게 지나온 과정들을 복기하며 생각을 정리해보지 않았다면
그냥 상사는 불편한 존재이니깐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하고 무시했을 게 뻔하다.
헌데 말이다, 상사가 왜 불편하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사가 있지 않은가.
폭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무가내거나 너무 많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친절하고 배려해주고 깍듯하게 대해도 무섭다는 말이나 불편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상사가 꼭 있다.
결국은 상사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것이 아닌가 싶다.
눈치보고 소극적이고 지들끼리 똘똘 뭉쳐 능력을 커버하려는 후배들이라는 내 인식이 결국 후배들에게 눈빛을 통해 발사된 것이고 그들을 피하게 만든 건 아닌지.
이 일은 나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미세한 떨림, 표정, 그리고 그들의 나를 보지 않고 다른 동료를 보는 그 눈빛..
그것은 이미 나에게 마음 속 자리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신호였다.
내가 바뀌었는데도 그렇게 나온다면 그들은 문제있는 거겠지만
내가 안바뀌면서 그들의 변화만을 바란다면, 그건 필시 내가 문제인 거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인정받는 상사는 영원히 될 수 없는 거다.
자, 이제 나를 좀 다듬을 차례다. 쉽지 않겠지만 각고의 노력이 정말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