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란...
해외에 머물던 친구가 잠시 귀국을 했다. 영원을 꿈꾸며 삼십년이 넘도록 연락하고 지내는 우리지만, 예전의 끈끈함이나 뜨거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밝게 웃고 여전히 수다스러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화 속 친구의 자식들은 공부도 웬만큼 하고 직장도 좋았다.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 역시 부족함이 없고, 연로하신 노부모하고도 잘 지내고. 나이 들어가니 그렇게 싸웠던 형제들과도 이젠 싸울일 조차 없다고 말했다.
부모가 너무 자신의 인생에 깊이 간여하여 미치도록 답답하다던 스무살 친구는,
월급받아 저축은 커녕 마이너스라며 너무 힘들다는 서른살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정의로웠다. 다만 청춘을 그리워 할 뿐이었다.
친구들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드는 것은 그들 낯빛에 스치는 어두운 그림자를 느꼈기 때문인데, 이것 역시 나의 오지랖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반면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각적으로 캐치할 수 있는 촉이라는 것이 발달해있는데, 그건 신호체계가 만들어낸 것이기에 신뢰할 만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 나에 관해 옆자리 친구가 읊어댄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만, 나는 교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말한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테니깐. 다음번 모임에도 저와 유사한 말들을 또 듣게 될테니깐.
각자 인생에 친구가 짐이 되는 상황은 없으니, 우리는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면 되는 걸까.
자리가 길어질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를 최우선에 놓는 일이 드물어졌다. 친구가 덜 소중해졌다기 보다는 다른 소중한 존재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연인이, 결혼과 함께 생긴 새로운 가족이, 아이가, 인생의 소중한 자리를 채워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선후배 동료들 역시 친구와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한 자리를 매웠다.
오랜 친구는 변하지 않기 마련이라는데, 진실할 때에 유의미하며 관계는 깊이를 더한다.
가죽신발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갖바치와 조선 최고의 관직까지 오른 조광조처럼
어떤 상황에도 상관없이 친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때 참될 수 있다.
친구들과 멀어질까 겉으로만 용기와 희망을 말한다면,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살아가는 삶은 또 어떤 삶인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 빠져 상대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정리하고 싶은 관계가 되는 건 시간 문제일 거다.
요즘 나는 삼십년을 알고 지낸 친구들과 절연하기 위한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들과 다투었거나 싫어졌거나,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 멀리해야할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곁다리 짚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는게 영 불편할 뿐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기 위해 만나는 관계는,
각자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관계는,
웃을 수는 있지만 헛헛함은 어찌 숨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송년모임을 한다고 단체방에 공지가 올라온 날, 나는 가겠노라 못가노라 답을 달지않았다.
대신 아무도 없는 동네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전화가 걸려왔다. 왜 안오냐고. 바쁜건 알지만 오라고. 기다리고 있다며. 당연히 참석하는 거 아니었냐고.
당연히? 그 말에 피씩 웃음이 나왔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그냥 일이 있어 못간다고 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거라 짚어줬다.
끝에는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