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는 언제나 그랬듯 퇴근 후 편의점에 들렀다. 냉동식품 코너 앞에서 망설이다 문득 깨달았다. '내 인생이 이 냉동식품처럼 차갑고 밋밋해지고 있구나.'
그날 밤, TV에서 우연히 요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화려한 칼질, 보글보글 끓는 소리, 맛있는 향이 화면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다음 날, 퇴근길에 마트로 향했다. 장바구니에 무작정 채소를 담았다. 계산대 직원이 물었다. "토끼 키우세요?"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요리할 거예요." 직원의 표정에서 '설마'라는 말이 읽혔다.
집으로 돌아와 앞치마를 둘렀다. 유튜브를 틀고 '초보자를 위한 간단 요리'를 검색했다. 첫 도전은 '양파 볶음밥'. "쉬워 보이네. 양파 썰고, 밥 볶고... 끝?"
칼을 들고 양파와 대면했다. 첫 칼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게 무슨 ninja 양파야?" 눈물을 훔치며 겨우 양파를 다졌다. 팬을 달구고 기름을 둘렀다. "좋아, 이제 양파를 넣고..." 그 순간, 기름이 튀어 나의 손등을 공격했다. "앗! 뜨거워!" 팬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숨을 쉬며 주방을 청소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엔 조심스럽게 양파를 볶았다. 그런데 어째 냄새가 이상하다. "이게 탄 냄새인가, 양파 냄새인가?" 결과물은 '숯 볶음밥'에 가까웠다.
셋째 날, 드디어 먹을만한 볶음밥이 탄생했다. 한 숟가락 떠먹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짜고, 기름지고, 양파는 덜 익었지만... 분명 자신이 만든 요리였다. "나 요리 잘할 수 있어!"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파스타'를 만들겠다고 덤볐다가 스파게티 면을 삶는 시간을 깜빡해 '스파게티 죽'을 탄생시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소스에 온 정성을 쏟아부었다. 맛을 본 후 나는 깨달았다. "아, 이탈리아 요리에 간장은 안 들어가는구나."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나의 요리 실력은 조금씩 늘어갔다. 어느 날 '김치찌개'에 도전했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이게 우리 엄마 맛인데..." 순간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시던 김치찌개, 학교에서 돌아오면 맡던 그 향기... 요리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추억과 감정을 담는 그릇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주말이면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구석에 숨어 있었지만, 어느새 "선생님, 이 소스 비법이 뭐예요?"라고 당당하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 번은 요리 시연 중 실수로 소금 대신 설탕을 듬뿍 넣는 바람에 '단짠단짠' 새로운 맛의 요리를 탄생시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어머, 이거 의외로 맛있는데요? 새로운 퓨전 요리의 탄생인가요?"
요리에 빠진 나는 주방 가전 덕후가 되었다. 집에 요리 관련 기구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거실은 어느새 각종 믹서기, 에어프라이어, 식품건조기 등으로 가득 찼다. 한 번은 고가의 스탠드 믹서를 사고 파스타를 만들겠다고 덤볐다가, 밀가루를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주방 전체가 하얗게 변했다. 그날 밤 나는 주방 청소를 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요리의 대가가 치르는 댓가인가..."
이제 그의 주방은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실험실이자, 놀이터이자, 때로는 명상의 공간이 되었다. 칼질하는 소리,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 이 모든 것이 그의 인생을 채우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었다.
나는 이제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실수를 하게 될까?" 나의 눈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가득하다.
요리는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준 열쇠가 되었다. 때로는 짜고, 때로는 달고, 때로는 쓰지만... 그 모든 맛이 어우러져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맛있게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