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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Oct 03. 2022

소들이 지나갑니다. 천천히 가 주세요.

풀을 뜯으러 가는 길 Quicks Traditional

농장에서 직접 젖소를 길러 그 우유로 만든 치즈에는

팜하우스 치즈 Farmhouse cheese라는 이름이 붙는다. 영국의 전통 치즈는 규정을 나라에서 관리하는데, 제조 조건 중 하나가 생산 지역의 우유 사용이다. 치즈를 만드는 농가에서 우유는 곧 소의 관리로 시작되고, 계절에 따라 유축되는 우유 속 지방과 단백질의 비율이 달라지기에 그들은 소를 잘 먹이고 잘 키우는데서부터 치즈 제조를 이미 시작하고 있다 했다. 그간 많은 전통 치즈 농가들을 다닐 때면 농장 주인들은 나에게 그들의 치즈보다 그들의 소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먼저 보여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퀵스 농장은 500년 동안 14대째 젖소를 키우는 농장으로 이들의 노고가 곧 전통 치즈를 지키는 근간이 되고 있다.  



토요일 오전, 농장의 치즈 작업은 쉬는 날이었지만 메리는 주말엔 소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농장의 사무실에서 만난 해미쉬 Hamish는 뉴질랜드에서 영국 남부의 시골까지 농장의 일을 배우려 왔단다. 그는 흙이 잔뜩 묻은 장화를 신고 세상 편한 미소를 보이며 소가 풀을 뜯으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퀵스 Quicks의 농장은 수 백 년째 이어온 터라 치즈 작업장 주변이 온통 풀이 가득한 평지였고, 나는 농장의 소들이 그저 마당에서 풀을 뜯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기 축사의 모든 소들이 길 건너의 풀밭으로 이동할 거예요. 시간이 좀 걸려요."

축사를 빠져나온 소들은 해미쉬의 통솔이 없음에도 알아서 숲길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소들도 축사를 나오면 풀을 뜯는 걸 알고 길을 따라 잘 이동해요. 소는 생각보다 똑똑하답니다."

해미쉬가 해 주는 일 이라곤 풀 숲에 숨겨 놓은 표지판을 꺼내어 길 목 중간에 놓는 것이었다.

낯선 나를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젖소는 해미쉬의 워워! 소리에 곧바로 일행을 따라 엉덩이를 돌렸다.

소들은 숲길을 따라 물 흐르듯 이동했고 사진 찍는 소리에 나를 바라보느라 멈칫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해미쉬의 워워! 소리에 금세 움직였다. 소들이 지나가는 동안 자동차 몇 대가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런 교통체증에는 익숙한 듯 소들이 모두 지나가는 10여분 동안 경적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소들이 들어간 숲길을 따라 걷자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길목은 잠깐이었을 뿐 그림 같은 대저택과 함께 들판이 나타났다.

"저 대저택이 메리가 어릴 때 살던 집이래요."

외국 동화의 백작쯤 되는 사람이 살았을 법한 작은 성이었다. 그럼 메리는 어릴 때 공주처럼 자랐나..? 농장을 운영하느라 장화나 운동화를 즐겨 신고 주말에는 마당의 산딸기를 따며 소탈해 보이는 그녀는 생각해 보니 거대한 농장의 주인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수 십 마리의 소가 분명 풀숲을 통과해 들어갔는데 대지에 보이는 소는 몇 마리 안되어 보였다. 끝도 없는 들녘에 이런 평화가 없어 보였다.

"소는 하루에 80kg 정도의 풀을 먹어요. 몸무게가 보통 550kg인데요. 마른 건초보다는 풀을 뜯거나 습한 채소를 갈아 먹여요."

하루에 80kg의 풀을 뜯으면 며칠 만에 언덕 하나가 민둥산이 될 것 같지만 이에 대응을 위해 농장 근처에 거대한 옥수수 밭이 있는데 모두 소의 사료용이라고 했다.

그때가 한창 가을이어서 나는 알이 꽉 차오른 그 옥수수를 따다가 메리의 집에서 삶아 먹어 봤는데 사료용이라고 해서 옥수수 맛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냄비에 삶아 놓은 옥수수를 메리가 몇 개나 가져다 먹었다. 영국 사람들도 우리처럼 옥수수를 삶아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소금과 설탕을 넣고 삶은 사료용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는 건 예상 밖이었다.


**우리나라의 농촌진흥청의 국립 축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소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양은 체중의 10~15%이며 몸무게 400kg 소가 하루에 40~60kg의 생초를 먹는단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 낯섦을 느낀 소는 꽤 큰 소리를 내며 울어 대기도 했다.

소들이 풀을 다 뜯고 나면 다시 숲길을 따라 길 건너의 축사로 이동을 했고 해미쉬는 아까 사용했던 "소들이 지나갑니다. 천천히 가 주세요." 푯말을 길 가운데 세워 두곤 모두 축사로 들어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렇게 일정이 끝났나 싶었는데 소 들이 두 번이나 지나간 길은 발에 붙어 있던 흙덩이들, 지나가며 뿜어 대는 분비물 등이 뒤엉켜 도로가 진흙 밭처럼 난리였다.

풀 숲에서 엉켜있던 물 호스를 꺼내온 해미쉬는 그 난리 난 길목을 깨끗이 치우고 서는 말했다.

"이제 송아지를 먹이러 가요"

길가에 떨어진 진흙 덩어리, 소의 분비물들을 치워야 비로소 젖소의 풀 뜯기의 일정이 끝난다.

우리는 차를 타고 또 다른 언덕으로 이동했다. 햇살이 눈에 부서진다는 표현이 그대로인 초록 능선에 송아지들이 가득 이었고 해미쉬가 나타나자 어미소가 온 것 마냥 송아지들이 달려왔다. 수 십 마리의 송아지들을 한 번에 먹일 수 있는 밀크 바 Milk bar를 끌고 그 가운데에 멈춰 서자 어미소의 젖을 찾아 물 듯 송아지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밀크 바의 우유는 동이 났고 두 분류로 나뉜 송아지들을 모두 먹이고 우리가 떠나려 하자 송아지들이 나를 바라봤다. 더 없어요? 하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이다.

우유를 먹은 송아지들은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 뭐 더 없어요? "

송아지가 있는 언덕 근처는 자동차로 지나도 될 만큼의 끝없는 옥수수 밭이었고 가을이어서 알이 꽉 찬 옥수수가 가득 이었다.


초록 초록한 언덕을 몇 번 오갔으니 이젠 일정이 끝났으려나 했지만 지금부터는 치즈 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오후 유축을 해야 한단다. 젖소는 보통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유축을 하기에 아직 하루 일정이 끝나지 않았던 게다.

모든 젖소들이 우유를 비워내고 온 몸이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제 막 태어난 송아지들까지 챙기고 나서야 해미쉬의 하루 일정이 끝났다.


그저 농장의 소들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러 왔건만 유유자적한 소들의 모습은 이 모든 과정에서 잠깐의 시간이었을 뿐 소를 키우는 농부는 숨 쉴 틈이 없었다. 모든 일과가 끝나고 해미쉬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얼이 빠진 얼굴로 농장을 나왔다.

유축을 끝내고 길을 따라 나가는 젖소.
이제 막 태어나 풀을 못 뜯는 어린 송아지는 축사에서 우유를 따로 먹었다.


 

** 이 글은 퀵스 데어리에서의 에피소드이지만 브런치 북에는 싣지 않은 글입니다.

퀵스데어리의 깊은 전통과 농장 주인 메리퀵스 소박하지만 곧은 삶의 모습은 아래 브런치 북에 정감있게 나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heddarch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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