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그리고 듣고 싶었던 말.
하람이가 떠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건네는 마음이었을 텐데
당시는 여유가 없었다 보니 그런 관심들도 버겁기만 했었다.
그렇게 정리가 되는 관계들이 늘어갔다.
기다려주는 연이 있는 반면, 걱정해 주는데도 그러냐며 서운해하는 이도 있었다.
후자는 시리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못 이기듯 연을 끊어냈다.
사진은 사랑하는 슬기를 만나러 멀리 강남까지 간 날이다.
아동심리를 연구한 박사님 우리 슬기.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우리 슬기.
배려심이 깊어서 기다려 준 슬기.
슬기였기에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었고, 고맙게도 뿌리치지 않고 잡아주었다.
이 날은 슬기에게 염치를 불구하고
큰 아이에 대한 상담을 요청한 날이다.
이유는,
하람이가 떠난 후로 큰 아이가 동생 그림을 자주 그렸다.
하늘나라로 떠난 동생의 그림.
가족 그림을 그리면 빠뜨리 않고 늘 동생을 그렸고,
아무도 묻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우리 동생은 아파서 천국에 갔다고 소개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이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sos를 쳤다.
슬기는 우리 가정의 이야기,
아이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대답해 주었다.
귓바퀴를 통해 스며 들어오는 슬기의 목소리는 이내 안정감을 찾아다 주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는 나이.
10달을 기다린 생명이 태어났지만 데려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동생의 탄생을 기쁨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우는 엄마와 아빠.
이상한 집안 분위기.
그래도 아이가 잘 버티고 있는 거다.
그리고, 언니도 정말 잘 버티고 있다.
언니는 참 단단한 사람이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슬기의 진심들은 살아있었고, 그 생명은 귀와 마음을 통해 내 몸에 뿌리를 내렸다.
단단하게, 깊게 뿌리내린 덕에 이 날 이후로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은 품은 적이 없다.
이 얼마나 복인가
나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약하고 아픈 시기를 걸어가고 있을 때
단단하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란 말인가.
평생을 가도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의 가장 서슬 퍼런 시기에
아주 끊어지거나, 곁에 두게 되는 것들로 정리되는 걸 경험하게 됐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관계든 사랑이든.
나를 위함이든, 나를 위함을 빙자함이었든 말이다.
덕분에 살았어 슬기야.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살렸어. 진심이야.
이제야 마음을 전해.
고마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