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보인다.
하람이가 떠나고 나서 남편의 고통이 느껴졌다.
본인은 아빠로서 해준 게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를 보내고 회사의 배려로 일주일 동안 쉬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보다
나를 케어함에 전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남편이 너무나 안쓰럽다.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어서, 본인을 살피지도 않고 이렇게 케어해 주는 건가..
남편이 내게 쏟아부어 주었던 배려들을 갚고 싶었다.
나와 똑같은 아픔 속에 있으니까.. 누가 누굴 더 챙기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밥 먹었어?"
"오늘은 기분 어때?"
"갑자기 하람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
"공장으로 가는 길에 여의도 성모병원이 있잖아, 엉엉 울었네"
"이 노래 듣는데 눈물 나서 혼났어."
"우리 아기 이쁘다고 말하고 싶은데.. 자랑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
이런 이야기들을 편히 주고받으며 서로를 더욱 감쌌다.
남편만 바라보고 신경쓴게 언제였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분명 그럴때가 있었는데..
1년 3개월의 연애, 결혼하자마자 온 허니문베이비
우리가 온전히 서로를 바라본 건 연애 1년 3개월 + 임신기간 10달이 고작...
그렇게 만 4년을 엄마와 아빠로 지내다가,
큰일이 있고 나서야 깨달아졌다.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누구인지.
나에게 남편은..
폭풍우 치고 파도가 거센 망망대해 속에 파선될지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 같은 사람이다.
닻을 깊게 내려 우직하게 모든 풍파를 견디고 있는 든든한 배.
그런 남편에게 기대기만 했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하람이가 떠나고부터는 내가 더 견고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니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니까.
이루말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서도 살아내는 수고를 하다 보니
웃을 일도 생기고,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 되었다.
아픔은 아픔만 가져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고, 소홀하게 대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아픔을 통해 정말 소중하고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해 재정립하게 되는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는 남편이요,
두 번째는 나의 아이요,
세 번째는 나요,
네 번째는 우리였다.
하람이의 공석은 "우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