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새싹과 꽃이 피는 봄이 아프기만 했다.

by 효돌이작까야

유난히 시려서 아팠던 21년의 겨울도 자연을 만드신 신의 섭리를 따라 억지로 억지로 밀려나주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겨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봄이었다.


양말로 발목을 가리고, 기모 레깅스를 신으며,

코듀로이 원피스를 걸치고

나는 아직 겨울이라고, 아직 많이 춥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버버리코트를 휘두르고 다니며 봄이 왔음을 한참 알리고 다녔던 것 같은데…


사진은 서울숲.

둘째를 임신하고, 초기에는 입덧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말기가 되면서는 아기가 밑에 있고, 자궁 경부가 짧아졌다는 이슈로 누워지네야 했었다.

아이를 보내고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는 셋이 똘똘 뭉쳐서 다니지 못했던 곳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 당시

“지금… 이걸… 느껴도 되는 건가?”하는 감정을 느꼈었다.

“해방감”, “자유함”

이 감정은 마음에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또 오롯이 육체가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열 달을 입덧으로 힘들고, 임신으로 무거웠던.. 그리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워지네야 했던 상황으로부터 해방돼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


기분 좋음을 발끝에 달고 신이 나서 걷다가 욕심을 내어 살짝 달려보는데

골반이 내 골반이 아닌 느낌에 이내 속도를 늦추고 걷는다.

‘아, 아직 아니구나. 섣불렀구나, 천천히 천천히 가야 하는구나.‘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핀다.

‘와… 진짜 예쁘다…. 황홀하다…

언제 이렇게 꽃이 피었을까.. 진짜 활짝 피었다..

……. 우리 하람이 폐는 못 폈는데….‘


몸의 자유함과 해방감을 느껴 신남을 즐긴 것도 잠시

꽃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감탄한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수없다.


주르륵 눈물이 났고, 세상이 미웠다.

내 새끼는 폐가 펴지지 못해서 세상을 떠났는데.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봄이 왔다고 새싹이 돋아나고, 벚꽃이 만발하는 것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걸 보고 아름답다, 예쁘다 감탄하고 있던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누구한테도 말 못할만큼 외롭다 느낄 때

자연을 보며 위로 받은 적이 정말 많다.

늘 있던 자리에 있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기복이 있는 내게는 피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안정적인 친구의 모습이 되어 주었다.

사람이 어찌하든 끝까지 품어주는 것 또한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람이가 떠나고도 변함없이 자기 일을 하는 자연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다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바뀐 건 자연이 아니라 나 자신이란 걸 깨닫지 못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 몇 번의 봄을 맞이하고 보니 변함없이 봄을 보여주는 자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계절을 겪으며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게 됐다.

왜 아니겠는가, 사랑을 하더라도 사계절을 겪어보라고 이야기하는데..


5주기를 보낸 지금은

2월이 되면 여전히 마음이 허하다.

봄은 봄대로 아름답고, 여름은 여름대로 쨍하다.

멈춰져 있던 것들이 다시 돌아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잘”살아내고 싶다는 욕심보다 주어진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칭찬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거면 된 거다. 그거면.

큰 상처를 이고 지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장한가.


막둥이를 데려다주는 길에 보니 화단에 꽃들이 피려고 하던데,

하원길에 새싹들을 보며 칭찬해 줘야겠다.


긴긴 겨울 버텨내느라 애썼다.

나도 너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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