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예쁘게 매듭 진다는 것.
결혼 한 엑스들끼리 만나 무슨 매듭을 지어? 굳이? 왜?
결혼 10년 차.
엑스는 2년 차.
작년 11월 어느 날 톡이 왔다.
"누나. 저 결혼해요."
소식을 전해 준 엑스가 반갑기도 하고, 의외였고, 고마웠다.
1년째 전해주지 못하고 묵혀둔 축의금을 전달했다.
따뜻한 차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허락됐다.
10년 만에 마주하는 엑스와 나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90분 동안 10년의 삶을 이야기하며 100점 만점의 끝맺음을 지었다.
3월 초부터 오늘까지 감정의 파도 속에서 지내왔다.
엑스 때문에? 아니,
"나"로 살아내기 위한 새싹이 케케묵은 10년의 세월을 밀어내느라.
결혼하기 전 이효진은
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사회생활이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고,
툭하면 울어서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표현함에 거침이 없었으며
'이런 나를 감당 못할 거면 친구 할 수 없어' 라며 천상천하유아독존 같은 자세로 살기도 했다.
자신감 하나로 살았었는데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존감이 낮았다는걸 알게 됐고,
겨우 붙잡고 살았던 자신감을 참 많이 잃었다.
아이를 임신함과 동시에 내 이름은 내려놓고 "엄마" 모드 ON.
무지막지한 책임감에 파묻혀서 10년을 살았다.
"불안, 책임, 보호, 안전, 위험, 안내, 지도" 이런 키워드들만 가득했다.
범죄들만 가득한 도시에 사는 경찰인것처럼.
둘째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그나마 안전하다 생각하며 쌓아두었던 모래 벽들이
와르르 무너졌고, 일어날 힘도,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않았다.
우울의 끝을 허덕이고 있을 때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것이 글쓰기였다.
쓰는 행위를 통해 겨우겨우 숨을 몰아 쉬며 살아가게 됐다.
벌써 3년차인가?
종이위에 써내려간 글씨처럼 생각과 감정들을 흘려보내며
꿈과 희망, 살아야 할 이유도 찾게 됐다.
벗겨냄의 과정들이 있고나니 알록달록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싶었나보다.
얇고 하얀 한지위에 곱디 고운 분홍 물감이 한 방울 딱 떨어져 퍼져 나가듯.
그 과정의 시작이 3월이었던 거다.
매듭을,
10년동안 스스로를 엄하게 묶고, 또 묶었던 존재와의 작별이라 표현하고 싶다.
엄함으로 10년을 살아왔기에 한번에 놔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매듭 지어보려고
이 매듭보다 더 안전한 안전핀이 있기에.
남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큰 해일이 일어난 바다에 겨우 떠있는 뗏목이 나라면.
멀리 떠내려가지 않게 붙잡아주고 있는 것이 닻이 남편이다.
부서지고, 망가져도 있는 그대로를 같이 겪고 있는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아끼고, 아파해주는 사람.
알록달록할 때 만나서
10년을 무채색으로 살아도 불만을 삼키는 사람.
다시 색을 찾아가는 모습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반가워해주고 귀여워해주는 사람.
이 사람이
나의 시작이고 나의 끝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매듭은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시작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3월은 10년 동안의 흑백생활을 매듭지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세월이 축적되어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알록달록한 삶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충분히 살아낼 수 있으리라.
이미 내 안에 빛이 있으니까.
참 찬란하게 빛나느라 아프고 힘들었다.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