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당신은 자존감이 높아요? 낮아요?
높은지 낮은지 어떻게 알게 됐나요?
-저는, 확실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저 사람 나 때문에 화났나? 내가 뭐 잘못했나?
아.. 이 말하지 말 걸…
“자존감이 낮은 사람”
언제부턴가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어떤 관계든 그 속에서 드러나지는 문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안경이 된 것 같다.
한참 이 단어에 꽂혀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불행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방법으로
주변을 원망하며 살아갈까.
이런 답답함을 안고 살아온 것 같다.
발걸음에 음표를 달며 신나게 살았던 싱글일 때는
자존감이 낮음을 알아도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아,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혼자 속 끓이는 일이
잦긴 했지. 자책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육아와 출산을 하면서는
자책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다.
엉키고 엉킨 실타래를 붙잡고
대체 이 시작은 어디냐며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거냐며
엉엉 운 날들이 수두룩 하다.
세 번의 출산으로 이런 생각과 감정이 길어지고
더 이상은 반짝이던 내가 아닌, 굴러다니는 먼지만도 못한 것 같은 자신을 매일매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쓰레기였나,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혼자 살걸….’
돌이킬 수도 없는 일들을 후회하며
일렁이는 바람에 바닥을 나뒹굴어 다니면서 말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 이후부터 뿌리는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강한 집념과 어마어마한 원망을 동반하면서.
그 시작을 알고 싶어 내면의 깊은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꽤 많이 어릴 때로
아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1. 찌그러진 자아상.
매일 마주하는 보고 싶지 않은
최고의 스트레스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몸이다.
아주 평생 동안 스트레스의 주원인이 되는 것이
이 빌어먹을 몸뚱이다. 젠장할.
스스로도 믿기 어렵지만 초등학교 1학년때 까진 몸무게가 미달이었다고 한다. 겨우 18킬로 정도?
(지금 우리 루똥이가 키 130에 25킬로 정도 나간다. 25 킬로그램이 나가도 벗겨놓으면 갈비뼈가 보인다.)
엄청 말랐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픽하면 코피를 흘려댔다.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은 몸집을 키워주겠다고
좋지도 않은 라면을 주야장천 먹이셨다고 한다.
그 덕에 살은 풍선처럼 후- 후- 늘어났지.
지옥은 3학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살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헬게이트는 열렸고
지금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뇨. 가족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다이어트를 강요받았고,
부로부터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을 들으며
(걱정스럽다며 라면을 먹일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우리 부모의 선택이 개탄스럽다. 참)
10대 소녀의 마음엔 자신을 바라보는 찌그러진 시선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들이 켜켜이 같이 성장하게 되었다.
“아빠가 걱정되니까 너 살 빼라고!! “
“너같이 뚱뚱한 것들만 보면 한숨이 나와!
아주 미치겠어!”
“할머니 당뇨병 있는 거 알지?
너 당뇨 안 걸리려면 살빼”
“숨소리가 왜 그렇게 커? 뚱뚱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이제 고작 초등학교 3학년 10살짜리한테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서적 학대를 받은 거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무조건 말라야 해’라는 그릇된 아름다움의 기준이 생겼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 끝에 자기혐오를 하고.
“누가 나를 이렇게 살 찌우래?” 하며
부모를 원망하게 되고,
몸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외모지상주의, 완벽주의로 엄격한 잣대를 만들게 됐고,
훈육을 무력으로 했던 아빠에 대한 두려움에 느끼는 무력감으로 내 안은 썩고 썩어 30년을 곪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의견이나 생각대로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맞춰주고 배려해 주는 게
일상이었고
그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을”의 삶을 선택해서 살아왔던 것이다.
2. 주는 것이 더 편한 사람.
선물, 마음, 공간, 배려할 수 있는 건 해주는 게
행복하다고 느꼈다.
연애스타일도 요구하기보다 맞춰주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봐줄 만한 외모이기에 말하면 먹혔기에 자존감은 낮아도 어딜 가도 꿀리지는 않았고,
그로 인해 자신감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1:1의 깊은 관계 안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면 오래 만났다.
아… 다음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라는 마음으로 헌신했었나 보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상대에 따라 달랐던 것 같은데 집돌이면
나도 집순이가 되었던 것 같고,
해답을 가져오길 바라는 사람이면 무엇을 할지
코스를 정해서 만났던 것 같고,
따르길 원하는 사람이면 그저 따랐던 것 같다.
상대가 편안해하고 나의 선택으로 인해 행복해하는 걸 보면 덩달아 행복했기에 진짜 나의 행복보다는
상대의 즐거움에 집중을 했었다.
그런 연애가 반복되고 이성의 감정을 떠나 사람대
사람으로 정말 애정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4년? 5년 정도를 만난 것 같은데 연애 중반쯤 가서 그 이에게 사랑과 확신을 구걸하다 지쳐서 나뒹굴었었다.
그래. 서로 편히 끈만 놓지 말고 지내는데 거짓말처럼 돌연 그 이가 미친 듯이 사랑을 부어주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기다렸던 순간이고, 정말 기뻤고, 그 이가 나를 사랑하는 게 너무나도 느껴지는데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이제 받기 시작하면 되는데 , 지금까지 쏟아부어준 사랑받으면서 다시 채우고 알콩달콩 사랑하면 되는데 , 꿈꾸던 그날들이 시작인데
헤어지자니 미친 거 아니니 이작까야??!!!!
그 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물었지만 헤어짐의 이유는 아주 분명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었다. 그에게 줄 사랑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나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관계에게 흘려보낼 사랑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주는 것이 행복했기에.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해서 선택한 표현의 방식이었는데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어서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허망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공허함.
아,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믿고 행했던 것인 사랑은
아니었나 보다..
받는 것이 불편하고,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되려 주는 걸 선택하는 거였고,
‘나 같은 사람한텐 너무 과분한 사랑이다’ 하며 받은 것의 배의 배로 주려고 하니까 빚진 마음이 있던 거구나. 하며
모든 관계에 있어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이 연애를 끝으로 더 이상 연애는 하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
부모, 일, 연애, 그 어떤 것도 ‘너는 너야’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너무 외로웠고, 괴로웠고, 벗어나고 싶었다.
잃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 하필 결혼하고 난 이후라서 남편에겐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찾을 용기를 준 사람이
우리 남편이기에
그저 고마움을 이곳에서 한 번 표해본다.
지금도 여전히 받는 것이 불편하고,
갖고 싶은것이 생겨도
‘내가 이걸 가질 자격이 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어서 말하는 것이 힘들지만
전에 비하면 꽤나 표현하며 살고 있다.
나를 챙기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나의 과거가 어떠했든 그 과거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다.
끊어내고 싶다.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 언제부터였는지 알게 된 계기가 있었듯이 찾아가는 과정 또한 반드시 온다.
그 과정의 길에 남편과 아이 셋, 그리고 나 자신, 브런치스토리,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만나게 됐다.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깊은 절망과 허망함 상실감 무력함에 숨 쉬는 것도 귀찮아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었지만
살아있으니 새벽녘 동트는 아침이 하이얗게 서글픈 것도 느끼고
그 아침 햇살에 걷히기 싫은 안개처럼 내 안에 어둠도 걷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
.
.
그 누구 하나 반기지 않는 삶이라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는 당신의 삶을 반깁니다.
제가. 감히.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동행하고 싶어요.
우리가 이렇게 만나질 걸 누가 알았나요.
삶이라는 아름다운 빛 방울 끝에 우리가 만나게 된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