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 공주님이 태어났어요.
이미 딸 둘을 가진 엄마와 아빠와 외할머니는 이번 아이가 아들일 거라고 믿었어요.
엄마의 배를 본 주변 사람들, 점쟁이, 그리고 의사까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가을 새벽에 태어난 아이는 왕자가 아니라 공주였지요.
언니들과는 12살, 8살 차이가 나는 막둥이 공주.
공주는 씩씩한 아이로 자랐어요.
남자아이처럼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았고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거든요.
키도 크고 머리도 짧고 남자아이들과 싸우면 언제나 이겼던 공주는 언니들보다 튼튼하기도 했어요.
가족들은 그런 공주에게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이런 저런 잡일을 부탁하기도 했답니다.
전등도 갈고 고장난 기계를 고치고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면 공구를 동원해서 뚫어주고.
공주는 그게 좋았어요.
그래야 가족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공주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공주와 놀아주지 않았고, 엄마는 항상 아프다며 누워있거나 집에 없었거든요.
공주와 같은 방을 쓰는 할머니가 곁에 있었지만 다정스러운 성격은 아니었어요.
특이하게도 공주는 엄마보다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둘은 야구나 복싱 또는 레슬링 중계를 같이 보곤 했죠.
공주는 남자아이들이 아빠와 할 법한 일들을 하면 아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빠 역시 따뜻한 품은 아니었나봐요.
공주가 느끼는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고 그것을 잘 했을 때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었어요.
공주는 그렇게 하려 노력했고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공주는 가족들 누구에게도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거든요.
나를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기에는 가족들이 너무 멀리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요.
공주는 공식적으로 ‘온 가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막내’였지만 사실 공주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이는 그 눈빛 하나를 보고 어리광을 부릴 사람을 고르잖아요.
공주는 할머니가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그리고 그게 끝이었던 것 같아요.
공주가 할머니에게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먼저 부탁한 적은 없어요.
공주에겐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어요.
어리광은 그런 거잖아요.
나를 예뻐해줘.
라고 몸으로 말하는 것.
가족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때의 엄마 아빠는 육아를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고 힘이 들었을 거예요.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동생을 품어줄 만큼 어른은 아니었고요.
집에 있을 때 공주는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어요.
방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퍼즐을 조립하고 마당에서는 강아지들과 병원놀이를 했죠.
가족들은 혼자서도 잘 노는 공주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공주는 그렇게 혼자서도 잘 하는, 그래서 혼자서만 하는, 아이답지 않은 아이로 자랐어요.
그리고 여전히 그런 아이를 잔뜩 품고 있는 어른이 되었어요.
공주가 오랫동안 몰랐던 건 스스로가 그런 어른이라는 사실이었어요.
독립적이면서도 전혀 독립적이지 못한.
항상 혼자서 모든 것을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가득한.
하지만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털어놓거나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
대신 공주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돌보는 데 익숙했답니다.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본 기억이 몸에 새겨지지 않은 사람이 흔히 그렇듯이요.
심리학적 용어로는 ‘투사적 동일시’라고 하는 그 방어기제 말이에요.
공주는 스스로가 돌봄을 필요로 했지만 누구에게도 돌봐달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돌보면서 돌봄을 받고 싶은 마음을 달랬던 거예요.
공주는 남편도, 부모님도, 언니와 조카들까지 돌보는 일에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공주는 깨달았답니다.
남이 아닌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공주가 50살이 넘었을 때의 일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어요.
남을 돌보느라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던.
그래서 독립적으로 사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했던.
공주는 이제 공주라는 껍질을 벗어던지려 해요.
성벽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왕자가 다가와주기만을 바랐던 오랜 날들을 뒤로 하려 해요.
비로소 스르르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세상이라는 이름의 왕자에게로 가서 어리광을 부릴 거예요.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을 요구하듯이.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을 통해 아이에서 어른이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