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스트란? 미술에서 어떤 요소의 특질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와 상반되는 색채, 톤을 나란히 배치하는 일. 』인생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이 콘트라스트 기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어둠에 갇혀 허우적거릴 때가 더 많다.
삶은 다양한 면에서 콘트라스트 효과를 사용하다. 어둠은 빛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는 방탕으로, 때로는 분노로 그리고 고통으로 우리에게 드리운다. 방탕 속에서 다시 환한 세계를 지으려 노력했던《데미안》속 '싱클레어'처럼 우리가 결국 집중해야 할 것은 방탕이 아니라 환한 세계인 것이다.
《데미안》중에서
나는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해 하나의 '환한 세계'를 지으려 더없이 열렬하게 다시 노력했다.
어둠과 빛사이, 그 선물같은 순간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딱히 싫어하는 사람도 거슬리는 사람도 없이 두루두루 좋을 때, 삶은 참 시시하다. 여기에는 어떠한 사인도 없기 때문이다. 유난히 꼴 보기 싫은 인간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를 보고 내 가슴이 분노로 뜨겁거워졌을 때.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우주가 주는 수수께끼가 있고 또, 엄청난 보너스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짓된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분노가 치밀었다고 하자. 이것은 흥미진진한 사건의 전조이다. '나는 대체 왜 저 사람이 싫은 거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저들과 다른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거지?' 이제부터는 신나는 수수께끼 타임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미쳐 잊고 있었던 꿈, 혹은 성장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보너스 타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루의 모든 루틴이 완벽할 때, 운동, 독서, 글쓰기, 명상, 일 등 모든 일이 적절히 돌아가고 있을 때는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태와 방탕이 스멀스멀 다가올 때, 별 할 일 없이 그냥저냥 보내다가 의미 없는 일에 시간 낭비만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수수께끼 풀이를 시작해야 한다. 이 때는 괴롭지만 발견이 있다.
'내가 막사는 이유가 진짜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내 인생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가? 무엇부터 다시 세워나갈 수 있을까?' 적당히 잘하고 있을 때는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는다. 하지만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불이 뜨거워 버둥되게 되어있다. 그러다 사인을 알아차린다면, 축제다. 폭죽이 터질 것이다.
어둠이 있어서 빛은 빛인 것이다. 지옥은 천국을 알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둠을 지나면 새벽이 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어둠 속에서 버둥대야 한다. 버둥대면 알게 된다. 더욱 선명하게!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다. 하지만 그냥 어둠 속에서도 가만히 있다면, 빛을 위해 존재하는 어둠에 우리는 잡아 먹히고 만다. 버둥대다 보면 반드시 영롱한 새벽을 보게 된다. 천국은 지옥, 아주 살짝 옆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