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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razy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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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치는목동 Oct 06. 2024

서울에서 떠나는 시골길 산책기 (feat.시고르자브종)

[Crazy Office 7화] 서울살이에서 만난 동물들 (4)

삶의 의욕을 잃은 나를 다시 일으켜준 보물 같은 장소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 부산의 아버지는


거의 명절에만 뵙게 되다 보니,


예전보다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


"별일 없지? 하고 물으시고, "네~별일 없어요." 하고 답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들의 전화통화는 그대로였지만.


어느 날, 명절이 다가오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처럼 태연한 말투의 통화.



몸이 좀 계속 안 좋아서....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암이라고 하네.


.........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듯, 믿기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암이라니.... 이럴 수가 있나.


이후 아버지께선 몇 차례 수술을 받으셨고,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지셨을 땐 부산으로 내려가 뵙고 올라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신없는 상태로 출근하니,


본부장님께서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신다.



"그게.... 의사 말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일주일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고."



"그럼 내가 회사에 말해놓을 테니까, 바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도록 해.


 대개 임종시기는 의사 말이 맞는 경우가 많더라.


 돌아가시고 나서 찾아가면 무슨 소용이야, 임종을 지켜드려야지."



그렇게 다시 부산으로 난 내려갔고,


그날 밤 새벽에 아버지께선 운명하셨다.




부산 영락공원의 납골당에 모신 어머니 곁에 아버지도 함께 모셨다.


이후, 회사에선 가장 바쁜 시기를 앞두고 정산 담당자의 퇴사가 발생하여


팀이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업무 포지션을 변경하여 정산 업무를 맡아달라는


본부장님의 부탁에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계산서 빨리 끊어달라는 고객사의 클레임에 종일 시달리며


새벽 3시~4시 퇴근하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다


어찌어찌 마무리를 지은 후, 난 번아웃이 왔고 퇴사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니, 할 수 없는 '그냥 쉼' 청년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지도,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원룸에서만 지내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큰 마음을 먹고 집 밖을 나서는 용기를 냈다.



동네 산책을 구석구석 하다 보면 으레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지도 앱을 켜지도 않고, 모험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길을 가본다.


그러다 보면, 먼저 가봤던 장소와 연결이 되기도 하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보물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화곡동에서 부천 방향으로 생각 없이 걸어 나가다,


부천 초입에서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광활한 들판이 펼쳐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리운 고향을 서울에서 만난 듯,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이렇게 발견한 고강들판과 대장들판의 시골길 산책로를


거의 매일 걷다시피 하며 조금씩, 조금씩....


황폐해졌던 영혼이 위로를 받았다.


고강 들판 인근 꽃집의 시크한 강아지


이 친구는 목줄이 없지만,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도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다.


사람을 봐도 본체만체할 정도로 낯을 가린다.


유쾌하고 낭만적인 분들이 가꾸는듯한 농장


어느 날은 김포공항 방면에서 대장들판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처음 발견한 새로운 길로 걷다 보니 큰 주차장이 나타났는데,


저 멀리서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반갑게 내게 달려오는 무언가가.......



......!?




그것은 바로........



시고르자브종이라 불리는, 시골 강아지 5형제였다.


어찌나 기운 넘치는지 서로 귀여워해달라고 몸싸움하고 난리도 아니다.


시골 강아지 5형제 (시고르자브종)


형제라고 다 성격이 같은 게 아니듯, 유일하게 이중에 한 마리만 낯을 가려서


반갑게 달려와놓고는 밀당하듯이 가까운 거리에 떨어져서


꼬리만 부지런히 흔들어 대는데..... 너무너무 귀여웠다.




혼자 자취하면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기에, 함께 공원을 산책하거나


특히 시골길을 강아지와 함께 걷는 것은 상상만 해봤던 버킷리스트였는데.......


당근마켓 동네생활에 올린 내 산책기를 보고


동네분들이 데려오신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꿈같은 일이 실현되기도 했다.


너무 의젓하고 얌전한 댕댕이


꾸준한 산책으로 단련된 너무 잘 걷는 댕댕이


꼬꼬닭 친구들도 만나고.......



시크한 강아지에게 인사도 시켜 주었다.


들판의 풍경은 항상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들판을 처음 걷기 시작한 여름부터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그렇게 혼자서 계속 난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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