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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razy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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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치는목동 Oct 04. 2024

커피숍에 갇힌 아기 새 방생하다.

[Crazy Office 5화] 서울살이에서 만난 동물들 (2)



서울살이 첫 번째 직장, 퇴사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흰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의 겨울.


가진 것 없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좋은 동료들과 함께 웃고, 울며 보냈던 시간들.


의도치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4년 후


입사일과 같은 날짜가 나의 퇴사일로 정해졌다.



원래는 2개월 전 퇴사 의사를 그룹장님께 밝혔고,


퇴사 사유로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말씀드리니


본인도 수긍하실 수밖에 없다며 공감해 주셔서


그대로 퇴사가 진행될 줄 알았다.


(참고로 면접 때 사투리 관련 질문을 하신 분이 그룹장님이시다.)


며칠 후, 기업영업팀의 회식이라 송별회를 겸한 자리가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불현듯 나타난 뜻밖의 불청객.


.............................. 바로 대표님이셨다.



퇴사한다고 했다며?

그룹장이 말하던데

퇴사사유가 명확해서

자신의 힘으론 붙잡을 수 없다고.

나보고 대신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내가 온 거야.

퇴사하지 마. 부산 내려간다고 들었는데,

나 아는 사람들 많아. 사람 푼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그룹장님이 대표님께 퇴사를 만류하는 부탁까지 하셨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사내정치를 싫어하고, 상사에게 아부 따윈 할 줄 모르던 나를


알아봐 주셨던 신뢰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못해 회사를 더 다니게 되었지만,


역시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나의 퇴사를 만류했던 상무님과 그룹장님이 모두 연이어 퇴사를 하시게 된다.


그제야 나의 사직서도 순조롭게 수리가 되었다.


이후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백수로 방황하다가


또 다른 업계 1위의 회사에 취업하게 되는데............


바로 퇴사한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있는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였다.






이직한 회사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미팅이 있어서 종로에 외근을 나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모처럼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가을날씨였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커피숍에 잠시 들르기로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니 전면 창 전체가 큰 유리로 되어있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열려있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거리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며,


모처럼의 여유시간을 가지고 있던 바로 그때.....!!


열려있던 창문 틈 사이로 쏜살같이 날아들어오는 새 한 마리.


아 깜짝이야.


아이스커피가 아니라 뜨거운 커피였다면, 마시다 뿜을 뻔했다.


다행히 유리창에 크게 부딪치며 들어온 건 아니지만


본인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몇 초만에 인지한 듯,


빠져나갈 곳을 찾아서 다시 파닥거리며 날갯짓을 해본다.


빌딩의 통유리 창문을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쳐 죽는 새가 아주 많다고 하던데,


이 새 역시 그렇게 건물인 줄도 모르고 비행을 하다 들어온 것이리라.


창문을 향해서 다시 날아오르지만, 열려있는 공간을 찾지 못해서 계속 헤매는 녀석.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의 음악소리가 커서인지 사람들은 다들 눈치 못 채고 있는 분위기.


몇 분 후, 이젠 지쳤는지 잠시 바닥에 앉아있는 작은 새에게로 살며시 다가가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참새를 닮은... 완전 아기 새이다.


야생의 새가 얼마나 빠르고 경계심 많은지 잘 알고,


성공 확률도 낮다는 걸 알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TV 동물농장 애청자인 나로서는


구조를 시도해 볼 수밖에 없다.


'저를 믿고, 여기로 올라타 주세요' 하는 바람을 가지고


커피 트레이를 바닥에 살짝 놓고 아기 새 앞으로 들이밀어 본다.


........... 어라? 된다!?


기적처럼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 트레이위로 슬쩍 올라탔고,


조심스레 그대로 들어서 창가 쪽의 열려있는 창문으로 모셔다 드렸다.


인사할 시간도 없이 금방 날아가 버릴 줄 알았는데,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아기 새.



여기로 나가면, 정말 나갈 수 있는 거야? 하고 물어보는듯하다.


나와 아기 새의 눈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조금 약해질 때쯤,


이제 준비가 된 듯 힘차게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하며 날아갔다.


지금도 잘 살고 있다면, 이젠 다 큰 어른 새가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 새는 '휘파람새'라고 하는 철새이며 '관심 필요' 등급의 새이다.


서울에서 여전히 부산 사투리를 쓰는 나처럼,


이 새도 사투리를 쓰며 운다고 한다.



(휘파람새에 대해 :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0/20160810003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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