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아이 둘과 괌
이번 주 괌 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막 9세와 6세가 된 자매와 함께였다. 남편은 없었다. 이렇게 다녀온 계기는 단순하다. 첫째 아이 친구네가 항공사 마일리지로 일본을 다녀온다고 했다. 우리 가족의 마일리지를 조회하니 올해부터 소멸이 되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4월부터 불리한 마일리지 정책이 적용된다고 했다. 3월부터 나는 복직이다.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방학이다. 둘째는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첫째 아이와 호주든 캐나다든 멀리 다녀오면 참 좋겠지만 당장 1달 안에 다녀와야 하는 상황에 사전 준비 없이는 뭔가 아쉬웠다. 둘째 아이를 양가 어딘가에 밀어 넣어 맡긴다 한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남편은 이미 휴가 불가를 천명했다. 세 명이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지역을 찾았다. 괌, 발리 베트남 등 휴양지로 좁혀졌다. 일정이 딱 맞는 비행기는 없었다. 가능하면 괌으로 가고 싶었고, 출국 비행기를 대기하고 기다렸다.
마일리지 티켓을 검색하는 동안 남편에게 아이들 데리고 해외여행 가겠노라 여러 번 말했다. 진짜 갈 줄 몰랐을 것이다. 나도 내가 가게 될지 확신하지 못했으니. 1월 5일, 대한항공 대기 확약 메일이 왔다. 저녁을 먹고 남편 앞에서 고객센터와 마일리지 티켓 예약 관련 통화를 했다. 친절한 고객센터 직원은 기내 키즈식 메뉴까지 미리 정할 수 있게 도와줬고, 이제 남은 일은 결제뿐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홍콩,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하와이, 보라카이, 괌 등. 써보니 해외여행 참 많이도 다녔다. 머리에 남는 여행은 그리 없다. 다녀보며 알았다. 여행 안 가도 괜찮다. 이번에는 왜 그리 원했나. 시작은 마일리지였지만,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 가는 경험을 주고 싶어서였다. 작년에 휴직을 하며 여름방학에 괌 1달 살기를 잠시 알아본 적이 있다. 관련 인터넷 카페 오프라인 모임을 참석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해외살이를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것을 감수하고 한 달간 아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불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3박 4일이면 딱 괜찮지 않나.
일단 결제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마일리지 유효기일 도래였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느냐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그리 크지 않았다. 홀로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가면서 남편이 관여한 일은 미아방지 팔찌 준비하라는 말뿐이었다. 여행 가기 일주일 남았을 무렵, 시댁에 들러 저녁을 먹고 우리를 배웅하시는 어머님께 남편이 알렸다. 아니, 차가 출발하려는 이 타이밍에? 뭐라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어머님이 염려를 덧붙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출발하기 전 주말에 아버님께 용돈과 전화도 받았다.
고생길을 자처한 여행을 다녀왔다. 괌 입국장에서 여권 세 개로 꽉 찬 크로스백과 아이패드 두 대, 색연필 12색, 사인펜 12색, 노트 2권, 읽을 책 한 권, 생리대 등이 들어있는 백팩을 몸에 붙인 채 잠이 든 18킬로의 둘째 아이를 안고 30분을 넘게 기다렸다. 줄이 줄어들 때마다 한발 한발 움직이면서. 지난달 건염 진단받아 치료한 왼쪽 발목이 다시 욱신거렸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괌 도착부터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힘든 줄도 몰랐다.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으니. 다음날 아침 두들겨 맞은 듯한 근육통을 느끼면서 입국장에서 겪은 일이 고난이었다고 인정했다. 내내 몸이 힘들었다. 매일 타이레놀을 먹었다. 여행 전날 생리를 시작해서 챙긴 약이다. 평소 생리통약을 먹지 않는다. 원인 모를 두통과 치통으로 진통제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나 몸이 힘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남편이 없어서 아쉽지 않았다. 남편을 일부러 빼고 온 것이 아닌데 없이 와보니 생기는 이 여유와 편안함이 뭐지. 몸은 고되나 마음이 평화로웠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중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알고 있던 여행 정보와 맞지 않아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때, 메뉴 파악이 안 된 음식점에서 주문 모험을 해야 할 때, 사고 싶은 물건을 빨리 고르지 못해 오래 생각하고 있을 때 등의 각종 상황에서 눈치 볼 일이 없었다. 이 자유로움이 여러 가지 고생들을 무감각하게 했다. 마음의 편안함이 몸의 고단함을 이겼다. 이번 괌 여행의 총평은 행복한 여행이다. 그동안 다녔던 여행들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순위로 만족스럽다.
남편 없이 아이 둘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용감하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도착해서 양가에 연락을 드리고 나서야 얼마나 다들 걱정하고 있으셨는지 깨달았다. 다음날 시댁에 잠깐 선물을 드리러 갔을 때 어머님이 몸살은 안 났는지, 혼자 어떻게 그렇게 다녀올 생각을 했는지 등 그간의 걱정을 쏟아 내셨다. 정말 다들 모르시는구나.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어머님, 남편 없이 가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정말 편했어요.”
평소 꼬박꼬박 올리지 않는 인스타에 3박 4일 대부분의 여행 사진을 올렸다. 뿌듯한 여행에 대한 사라질 기억을 붙들기 위해서 시작했으나 마지막에는 남편에게 이렇게나 잘 지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음을 고백한다. 백팩 속에 넣고 오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의 제목은 <라이프 트렌드 2023; 과시적 비소비>였다. 지금 내 마음과 행동이 바로 ‘과시적 남편 비소비’가 아닌지. 다른 아내들이 남편 덕 보는 것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내가 결국 남편 비소비를 자랑하고 있으니 뭔가 꺼림칙하다. 두 마음의 충돌은 어찌할꼬. 이런 독립적 성향은 타고난 것인가.
아무튼 2023년 가장 트렌디한 여성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