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은 고구마, 옥수수, 밤, 호박이다. 줄여서 구황작물이라고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농작물.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는 작물로서, 이에는 감자, 메밀 따위가 있다.
고구마는 우리 집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농작물이다.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물고구마 가리지 않는다. 찐 고구마, 군고구마, 고구마튀김, 고구마맛탕 조리법도 상관없다. 굳이 내가 해야 한다면 그냥 에어프라이어에 돌린다. 복잡한 조리과정 없이도 그 자체로 맛있으니까.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밤은 한 소쿠리 찌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다. 찜기 위에 푹푹 쪄서 말랑말랑해진 밤 껍데기를 이로 딱 쪼개서 찻숟가락으로 깔끔하게 파먹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작년 겨울에 칼집 난 밤을 1킬로씩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아이들이 군밤의 맛을 알아서 같이 신나게 먹었다. 찐 밤, 군밤이 못 따라가는 맛이 있다. 생율이다. 마트에서 진공포장 해놓은 깐 밤은 맛이 없다. 즉시 껍질을 쳐낸 밤이 진짜다. 오도독오도독 귀한 맛으로 먹는다.
최근 초당옥수수가 인기다. 생으로 먹어도, 쪄먹어도 맛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찰옥수수는 못 따라온다. 춘천에 살 때 맘카페에서 막 딴 옥수수를 한 포대를 주문했다. 첫째 아이가 좋아해서 삶아서 얼려놓기 위해서였다. 당시 내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있었다. 하나하나 까서 들통에 몇 번을 삶았다. 여름에 삶아도 가을을 넘기지 못했다.
늙은 호박죽, 애호박 전, 호박수프 등 호박요리는 손이 많이 간다. 아쉬운 대로 미니밤호박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익힌다. 요새 하루에 하나씩 먹고 있다. 찜기에 쪄봤는데 맛이 비슷했다. 우리 집에서 나만 먹는다. 퇴근 후 매일 베이글을 먹었더니 살이 쪘다. 점심은 가능하면 밥을 먹고 집에서는 빵을 먹었다. 우걱우걱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문득, 몸에 넣는 것을 바꾸고 싶었다. 호박을 한 박스 주문했다. 정해진 양만 먹을 수 있어서 절제가 가능하다. 일단 한통은 다 먹는다는 뜻이다.
구황작물은 내 마음이 몹시 부대낄 때 죄책 감 없이 섭취할 수 있는 고마운 먹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