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문 밖으로 나와서 세상으로

결(結). 그래도 마음 한 켠은 허전하다.

by 빛새
이 이야기는 <나의 대학원생 이야기>에 실렸던 이 글을 조금 더 풀어서 썼습니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던 2020년 2월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2022년 10월)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해주세요.


입원한 지 14일 만에 마침내 퇴원 허가가 떨어졌다. PCR 검사 후 2번의 음성 판정을 받았고, 그다음 날 오전에 짐을 싸서 퇴원하게 되었다. 창살 대신 비닐 벽이 있는 하얀 감옥에서 마침내 나갔다.


학수고대하던 퇴원이었지만, 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퇴원하게 되어 심통이 났고, 격리 병원에서 나갈 때 레벨 D 방호복을 입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성가셨다. 병원 문밖에서 방호복을 벗고, 간호사의 간단한 안내를 받고 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보름 만에 가족들을 만나니 가슴이 뭉클할 줄 알았지만,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는 안도감이 무덤덤함으로 나온 것 같았다. 울고불고하는 것보다, 갑갑하다고 짜증을 부리는 것보다, 평소처럼 무던하게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그 후에 난 어떻게 지냈을까? 코로나19 감염자로서의 빛새, 대학원생 빛새로서의 삶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코로나19 감염자로서의 나는,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협조자가 되었다. 퇴원 후 1년 동안 간간히 코로나19 관련 언론 인터뷰와 프로그램 촬영, 모 대학원에서 진행한 연구 패널로서 참여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최초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사회가 나서서 도와줬으니,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원생 혹은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낙인찍힌 사람이 되었다. 나는 대학원의 감염병 대응 프로토콜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학교에 보고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활동했던 덕분에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났지만, 그래도 코로나19 감염자라는 낙인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지도교수님과 감염병 담당 교원분께만 코로나 감염 사실을 연락드렸는데,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졸업하기 직전에 이걸 알아서 다행이었지만, 불쾌한 마음은 떨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상륙한 지 2년이 지났다. 3년 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 지긋지긋한 역병을 대처할 만한 역량을 지니게 되었다. '한번 걸리면 살아서 못 나오는 병'에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잠깐 쉬면 다시 회복되는 병'이 되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한 낙인 효과는 서서히 옅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받았던 그 답답한 심정은 2년 반이 지났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를 두고 모든 사람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세상이 나를 버린 기분을 겪었다. 당혹감, 상실감, 갑갑함, 그 외 다른 감정들을 나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기억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 그 고이 한순간에 날아간다면, 지금쯤 이 글을 쓸 수 없었겠지.


이 먹먹함은 언제 가실까.


Cover : Photo by CD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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