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튀김

아홉 번째 끼니 - 2

by 빛새

난 행복을 나누는 데 익숙하지 않다. 좋은 경험을 할 때도 무덤덤하게 느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30년 동안 우울했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을 아무런 일 없이 무던하고 평범하게 보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살다 보니 '하기 싫다, 울고 싶다.'라는 부정적인 말은 그래도 어느 정도 표현하게 되었는데, '기분 좋다, 감사하다.'라는 말은 입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로라하는 소문난 맛집에서 식사해도 '맛있네.' 한 마디로 퉁쳤다. 좋은 식사를 대접받으면 눈으로 보고, 카메라로 찍고, 입으로 맛본다고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음식 사진도 한 장 찍지 않았다. 그만큼 무심했다.


그렇지만 마냥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다간 내 결혼식, 부모님 장례식, 배우자 장례식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삶의 사소한 순간을 자세히 묘사하다 보면, 삶의 큰 순간을 더 생생하게 받아들일 것 아닌가? 그래서 갓 튀긴 고구마튀김을 한 입 베어먹고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 감정 표현 연습을 해 보았다.


고구마 맛있어. 고구마 너무 좋아.
포실포실, 달짝지근, 몽실몽실, 겉바속촉.

찐고구마, 구운고구마, 고구마말랭이, 고구마깡,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게 고구마튀김.

기름에 튀긴 건 신발도 맛있다지만,
그 중에서 최고는 고구마튀김 바로 너야.


아. 낯간지럽다.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본 적은 없었는데. 평소에는 무미건조하고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했는데,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 정신 놓고 글을 쓰니까 익숙하지 않았다. 글 스타일을 잠깐 바꿨을 뿐인데, 손발이 오그라들다니.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온몸이 말려 들어간다.


그렇지만 뭐 어때? 한두 번 하면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하다 보면 더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동안 나는 경상도 사나이라는 체면,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인 부담과 위상 때문에 무표정에 빠지곤 했다. 이젠 그런 가면을 벗어던지니 세상 다 시원하다. 좋은 순간도, 아쉬운 순간도, 이젠 담아두지 말고 표현해야지.


그래도, 고구마 정말 좋아.


PBSE1061.jpg 아홉 번째 끼니 : 떡볶이, 고구마튀김, 김말이, 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