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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Jun 13. 2022

순수한 만남

  지난주는 오랜 몇 사람을 만났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한 번쯤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만남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용건 없이 만나는 것도 이상하고 내가 찾아가야 하는 어색함도 무릅써야 했기에 조금씩 미루다가 3개월 전에 만날 사람들 중 한 분의 부고를 받고 적잖이 충격이 컸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모든 것이 기다려주지는 않는다고 또다시 새기게 되었다. 


  건축 분야는 학교와 업계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 사업은 대부분 심의나 심사를 거쳐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 건축과 교수들의 역할이 크다. 또 한편으론 교수들이 학생들을 교육시켜서 취업시키는 곳이 업계이므로 서로 상생이면서 견제이기도 한 멀고도 가까운 사이이다. 어찌 보면, 순수한 만남이 어려운 사이이기도 하다. 


  업무상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것은 몇 건설회사와 설계사무소이다. 그중에서도 따뜻한 정서를 느끼 수 있는 만남은 나의 경우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번에 먼저 찾아간 건축사는 큰 성공을 이룬 사업가이다. 자녀 결혼으로 연락이 닿으면서 약속을 하고 만나게 되었다. 22년 전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학과 교수들의 저녁식사 자리로 알고 나간 곳에 와 있었고 매너 있게 입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신은 다른 곳에 두고 얘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많은 일을 생각하고 처리해야 하는 사람한테서 느껴지는 '소울리스'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시청 심의 갔다가 우연히 그 분과 그의 어머님이 만나는 장면을 맞닥뜨렸다. 초여름이었을까.. 새하얀 머리,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땀이 송골송골하신 자그마한 할머니가 지극한 표정으로 아들을 붙들고 걱정하는 모습으로 얘기를 하고 계셨다. 저런 어머니를 둔 아들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름다운 정답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응원도 하게 되고 잘 이루어 낸 성과들을 축하도 하게 되었다. 

  더욱이, 지금 부산의 다양한 건축문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포럼을 운영하고 있고, 소외된 전통건축 분야에 대한 애정도 있어서 일선에서 물러난 나에게 연구 공간 제공과 지원을 하고 싶다고 제안도 했다. 물론 나는 독자적이고 자유롭고 싶어서 정중히 사양하고 감사의 마음만 전하고자 하였다. 초여름에 필요할 것 같은 작은 향수 하나 사들고 간단한 차 한잔 나누며 20여 년의 감사를 보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사전 연락 없이 갔다. 나는 느닷없이 '왜 가는지'를 말해야 하는 쑥스러움 때문에 지나가다(?) 갑작스레 이루어지는 방문으로 설정하였다. 여기 대표님은 우리 학생들 졸업 설계 작품전시회에 매년 참석하셔서 두 시간 가까이 되는 크리틱을 성심성의껏 해주셨던 분이다. 본인도 현상설계(경쟁심사를 거치는 설계)를 열심히 참여하시고 그 내용에 대해 늘 평가받으시는 진심 건축가이다. 학생들은 처음 받는 외부에서 오신 대표님들의 비평에 더욱 고무되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방향 설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설계사무실 일이 워낙 예측불허이어서 매년 그 시간을 비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바쁘신 와중에 꼭 찾아주시는 그분들이 정말 고마울 수밖에 없다. 

  놀라고 반가워하시는 대표님은 기력 없이 많이 여위어 있었다. 2월에 4-5kg이 빠지더니 당뇨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당뇨가 올 체질이 아닌데.. 61kg에서 57kg이 되어서 너무 기력이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58 정도가 된다고...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3개월 전 돌아가신 분도 갑자기 피곤하고 기력이 없어서 입원해서 검사를 받던 중이었다고 한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앞뒤 안 맞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건강 챙기면서 일 잘하시길 부탁드렸다. 긴 얘기 나눈 기억은 없지만, 학생들의 작품에 진지하신 분이시라 정서적으로 늘 가깝게 느껴졌던 내 마음이 잘 전해졌을까... 

  

  또 다른 만남은 번개처럼 저녁시간 집 앞에서 이루어졌다. 졸업 동기이고 설계사무실에서 1년 근무했을 때 같이 일했던 선배와 건설회사 이사인 선배가 집 앞에서 잠깐 보자고 연락이 왔다. 설계사무실 선배는 현상설계를 주로 하는 설계사무실을 잘 운영하고 있고 건설회사 선배는 현장 사고가 생겨서 심각한 상황이다. 설계사무실 선배가 개별적으로 이렇게 보자고 연락이 온 것은 함께 근무하던 때 이후 처음이다. 내가 명퇴했다는 얘기를 듣고 편하게 연락을 한 모양이다. 그 시간에는 밖에 나가지 않지만, 선뜻 나섰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학생 때처럼 떠들며 웃었다. 뭐든 자신들이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것 하라는 식으로 무슨 뜻인지 모를 너스레도 떨어주었다. 

  너무나 여러 번 심의 때 만날 일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나에게 부담이 될 부탁 한 적이 없던 선배가 아무 일 없이 찾아주는 그 마음이 뭉클하게 나를 감쌌다. 점심 먹으러 좀 와달라고 엄살까지 부리는 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삼켰다. 우리는 서로 아닌 척 믿고 챙기는 경상도 사람들이니까...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업무나 이해관계가 아닌 순수한 만남을 오랜 시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모임은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을 잃은 줄 알았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찾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망설임도 많았다. 만나면 뭔가 변명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이 그 자리 그대로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그 마음들을 잘 헤아리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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