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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Sep 12. 2024

내 글쓰기의 역사

프롤로그


글 주변을 배회하기

“소설 작가가 될 거예요.” 초등학교 공개 수업 당시, 30여 명의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을 앞에 두고 장래희망을 발표했었다. 당시 친구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직업은 연예인, 그다음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일상생활 중에 가장 자주 접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일반적인 학생들은 책 읽기를 싫어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으니, 소설 작가라는 내 꿈은 친구들에게 얼마나 특이하게 느껴졌을까. 내가 장래희망을 말하자 신기하게 여기던 사람들의 반응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대충 초등학생 3학년, 10살이었다고 치면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꿈을 반쯤 이뤘다. 당시에 쓰고 싶었던 건 소설이지만, 비록 종류는 다르더라도 결국 글을 쓰고 있긴 하니까. 나는 이른바 한국의 유니콘 IT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 중 한 곳에서 브랜딩을 위한 아티클을 제작하고 있다. 기업 웹 페이지 자체 블로그에 올라가는 7000자 내외의 글을 주로 작성한다. 일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는데, 감사함 가득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방황이 있었는가! 내 방황의 행적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면… 장래희망을 발표하고 난 후,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시 초등학생들에겐 믿음직한 지식의 원천이었던 네이버 지식인에 ‘소설가 되는 법’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소설가는 되기도 어렵지만 한국에선 먹고살기도 어려워요’라는 다소 가혹하며 짓궂은 답변을 확인했고, 지식인을 맹신하던 어리고 순수했던 나는 곧 꿈을 접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성의 없는 한 줄짜리 답변에 꿈을 접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음으로 소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보니 교사를 꿈꾸게 됐다. 중학생 땐 중학교 국어 교사를, 고등학교 땐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꿈꿨다. 그 꿈을 간직한 채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지만, 교직이수에 실패하며 오랫동안 지켜오던 꿈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로는 대중적인 직군 중 그나마 글 쓸 일이 많아 보이는 콘텐츠 마케팅을 잠깐 인턴으로 경험했지만, 정식으로 취준을 해보니 내가 원하는 글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다시 진로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거다!’ 싶은 운명적인 채용공고를 만나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회사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문득 ‘한동안 글 주변을 배회하다가 결국 글에 정착하게 됐구나‘ 싶었다. 글 쓰는 직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꿈꿔도 괜찮았을 텐데 지레 겁먹고 외면해 왔던 건 아닐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그 주변을 기웃거린 덕분에 에디터라도 된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내 글쓰기의 역사

글 주변을 배회하던 나의 행적을 되짚어 보니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됐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특정한 시기에는 특정한 종류의 글만 주로 써왔다는 점이다.


초등학생 - 소설

숙제로 주어진 일기 같은 글들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쓴 글은 소설이다. 당시에는 네이버 카페가 굉장히 활발했는데, 주로 내가 좋아하던 온라인 게임의 팬 카페에서 소설을 연재했다. 게임을 2차 창작 한 셈이다. 이미 잘 짜인 설정들을 가져다가 사용하면 되니까 창작의 허들이 낮았을 것이다. 어린 사람이 소설 쓰기에 입문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내게 그 카페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나 정보를 나누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소설 연재를 위한 공간이었다. 꽤나 오랜 기간을 그 카페에서 소설을 썼다.


처음에는 소설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짧고 하찮은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에 감사하게도 반응과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엄청난 쾌감을 맛보자 소설 쓰기에 빠지게 됐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올리면서 나름 필력이 붙었다고, 후반부 작품들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정량적인 조회수나 정성적인 댓글 반응이 소설 게시판 내에서 평균 이상은 됐다고 자부한다. (물론 지금 읽으라면 세 줄도 읽지 못하고 화면을 끄겠지만.) 장르도 판타지, 추리, 연애 등 다양하게 썼었다.


중학생 - 암흑기

중학생 시기는 내 글쓰기의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열심히 놀고 공부하느라 글을 쓰지 않았다. 한 번 소설 쓰기를 멈추니, 중학생 때 다시 소설을 써보려 해도 좀처럼 완성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소설은 한 줄도 쓰기가 어렵다.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을 거치며 오히려 아는 게 너무 많아진 탓일까. 이런저런 소설의 요소들을 의식하느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는 머릿속에서 방금 떠오른 이야기가 재밌는지, 더 재밌으려면 어떻게 바꿀지에만 집중하며 고민 없이 막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몰라서 두려움 없이 내지를 수 있는 당돌함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마구 떠올리던 말랑말랑한 머리가 그립다


고등학생 ~ 입대 전 - 시

고등학생 2학년 때 문학반에 들어가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동아리 시간은 담당선생님의 지도 없이 자유롭게 진행됐다. 담당선생님께서 동아리를 운영하기 귀찮으셨던 건 아닐 거라고, 문학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거라고 믿어본다. 동아리 시간의 90%는 친구들과 핸드폰으로 방탈출 게임을 했고, 10%의 시간만을 친구들과 장난치며 시를 끄적였다. 놀랍게도 그 경험이 계기가 돼 평소에도 꾸준히 시를 쓰게 됐다. (과연 선생님의 자유방임식 운영은 효과적이었다.)


대학을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더 자주 시를 쓰게 됐다. 과 내에서 시를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 덕분도 있겠지만, 그냥 대학생 1-2학년 때 많이 우울했다. 우울은 당시 내가 시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혼자 우울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마다 시를 썼고, 그 시기에 가장 많은 시를 다작했다. 2학년을 마칠 때쯤부터 우울을 어느 정도 해소하자 시를 쓰는 빈도가 확연히 낮아졌다. 그 이후로도 주로 불쾌한 감정을 혼자 정리할 때 간간이 시를 써왔다.


입대 이후 - 산문

입대 이후로는 주로 산문을 썼다. 글을 읽고 쓰는 게 군대에서의 시간을 버티는 내 방법이었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1년에 100권이 넘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고, 읽은 책에 대한 감상글을 네이버 블로그에 많이 쓰기도 했다. 관심사가 비슷한 이웃분들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된 이후로 블로그에 더 다양한 주제의 글을 자유롭게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허구적인 서사를 구축할 당돌함과 말랑말랑함은 여전히 되찾지 못했고, 군대에선 시를 쓸 원동력이 될 특별한 감정도 좀처럼 느낄 새 없었으니, 상대적으로 편하고 자유롭게 적어낼 수 있는 산문에 빠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이후로는 바쁜 삶을 살았다. 독서량은 줄어도 그동안 독서하는 생활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에 대한 감상을 글로 정리하는 데에는 소홀해지더라. 대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에세이류의 글을 더 자주 쓰게 됐다.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순간과 그 의미에 침잠하는 글들. 어떤 경험에 기록할 가치를 문득 느끼게 되면, 그 장면들을 글로 잘 담아보려고 했다.

 


앞으론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일 년 전쯤엔 한동안 시를 썼다. 이제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우울한 경험을 끄집어 오지 않아도, 시를 쓰곤 한다. 쓸 수 있는 시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거겠지. 근 몇 달간은 일기를 가장 많이 썼다. 매일 자기 전 손글씨로 큰 노트 한 장을 채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장만 채웠다. 읽었던 글, 봤던 영화, 일상 중에 관찰했던 현상을 자유롭게 썼다. 다양한 경험, 섬세한 관찰력, 깊게 파고드는 사고력도 글쓰기에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끈기 있게 지속되는 습관이 아닐지 생각했다. 아직 소설을 쓰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소설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 소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평소 한 가수에 꽂히면 몇 달간은 그 가수의 노래만 듣는다. 그러다 보니 특정 시기를 떠올리면, 그때 자주 들었던 음악의 멜로디가 함께 들린다. 반대로 예전에 자주 듣던 음악을 오랜만에 틀면, 그 노래를 한참 듣던 시기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음악과 과거의 장면이 단단히 결합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종류의 글과 과거의 기억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산문을 쓰다 보면 글쓰기로 지난한 날들을 버텼던 군인 시절이 떠오르고, 시를 쓰다 보면 대학생 때만 쓸 수 있었던 예민한 감성의 시를 다시 찾아 읽게 되고, 소설 소재를 잊기 전에 급히 기록하다 보면 마음껏 이야기를 지어 내던 초등학생 시절이 그리워진다.


앞으로 다가올 여러 시기들을 어떤 종류의 글로 채우게 될까? 분명한 건 어떤 종류의 글이 됐든 쓰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오가면서, 때로는 글과 잠시 멀어지더라도 언제나 그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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