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공책, 워드 파일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황정은
소설에서 ‘나’는 니체가 사용한 도구와 니체의 사상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한다. 니체의 변화를 만들어 낸 원인들 가운데 타자기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수기와 타자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펜으로 글을 쓰는 건 손에 지속적인 부담을 가하며 생각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지만, 타자기를 쓴다면 이전만큼의 부담 없이 가벼운 타격으로 문장을 빠르게 완성해 나갈 수 있다. ‘나’는 니체가 글쓰기의 도구를 바꾼 이후로 그의 문장이 어떻게 변화했을지, 어떤 박자를 가지게 됐을지 궁금해한다. 또 니체가 타자기가 아니라 워드 프로그램을 사용했더라면, 그가 말하는 초인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를 상상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사유로 뻗어나가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쓰기의 도구가 한 사람의 사상, 다시 말해 글쓰기의 결과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작성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되기도 했다. 나는 글을 블로그에 쓰기도 하고, 공책에 직접 손글씨로 쓰기도 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워드 파일에 쓰기도 한다. 각각의 방식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글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이것들은 글쓰기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글이 작성되는 공간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특히 블로그와 워드 파일의 경우 타자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글쓰기의 방식은 같지만, 그 글이 작성되는 공간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욱 적합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글쓰기의 공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공간에서 글을 쓰게 된 계기, 거기에 얽힌 내 욕망,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그 공간을 주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등을 담아보려고 한다.
블로그를 시작한 때는 2019년이지만, 2020년 후반이 되기까지 블로그를 시작했음을 알리는 ‘첫글’만 몇 달 주기로 반복해서 올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격적인 시작에 매번 실패했다는 의미다. 2020년 후반이 돼서야 다양한 글을 꾸준히 올리며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그 시기에 블로그라는 공간에 얽힌 어떤 욕망을 발견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글이 타인에게 읽혔으면 하는 욕망이었다.
2019년에 내가 처음으로 올렸던 포스팅에 의하면,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상에서 가치 있는 경험들을 기록하고 싶었고, 둘째로 블로그에 차곡차곡 아카이빙 된 글들이 어딘가에 사용할 수 있는 성과가 되기를 바랐고, 셋째로는 그냥 남들처럼 해보고 싶었다. 가장 우선적인 첫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선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내게 정말 가치 있는 순간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블로그 포스팅을 쓰다 보니, 포스팅의 분량을 위해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 자질구레한 일상까지도 담게 되고, 이 포스팅을 읽게 될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문장을 꾸미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해서 쓰고 있는 글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면 작성 중이던 포스팅을 곧바로 삭제했다. 블로그 시작을 선언하고, 포스팅 작성에 회의감을 느껴 삭제하고, 다시 진솔한 포스팅 작성을 다짐하고,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문득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글‘이라는 환상에 너무 고결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든 말이든 언어는 결국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고, 결국 독자와 청자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본인만의 목적을 위해 최대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쓴다 하더라도,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글이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완성되는 거라면, 타인을 완전히 배제한 글쓰기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나만의 기록을 남길 생각이었다면, 블로그가 아닌 개인 공책에 글을 썼을 것이다. 블로그 시작을 거듭 선언하면서까지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 했던 거면, 분명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욕망으로 블로그를 시작해 놓고서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음’에 오히려 내가 얽매여 있으니 어떤 글도 완성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대해 함께 소통할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던 과거를 그제야 떠올리며,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었으면 하는 욕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반응에 얽매이자는 게 아니다. 내 생각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두되, 타인을 완전히 배제한 글쓰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 글을 쓰는 동안 독자의 시선이나 반응을 의식한다고 해서 죄책감이나 실망감을 갖지 말자는 것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척하지 말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되니 오히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더욱 자유롭고 편안하게 글을 써서 올릴 수 있게 됐다.
블로그라는 공간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개방성이다.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읽힐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공간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스럽게 본인의 글을 쌓아가는 사람이더라도, 마음 한편에는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는 욕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지, 내 글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내가 쓴 글을 계기로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눈다면 어떤 생각으로 더 이어질 수 있을지. 글을 혼자서 쓰는 동안 나는 이런 것들이 늘 궁금했고,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 의문들을 해소해 나갔다. (언어의 본질이기도 할) 글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에 메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 개방적인 공간에 글을 써보기를 추천한다.
더 진솔한 일기를 적기 위해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쓸 때는 깊이 있고 내밀한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모두 적어내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블로그엔 주로 표면적인 일상들을 기록하거나 공개 가능한 얕은 수준의 생각들을 담게 되더라. 블로그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공책을 선택했다. (마침 그때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가 공책을 고르고 일기 쓰기를 시작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일기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일기를 읽자, 나도 공책에 당장 일기를 적고 싶어졌다. 또 크기가 큰 공책에 써야 생각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크기가 큰 공책을 샀다.)
확실히 공책은 개방적이지 않아 편안한 공간이다. 공책에 쓰는 글은 남에게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다. 따라서 글의 형식이나 구성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간다. 일상적인 사건, 읽었던 책, 봤던 영화, 느꼈던 감정, 대상이 무엇이 됐든 솔직하고 내밀한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다. 어딘가에 업로드할 글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처음엔 크게 느껴졌던 한 장을 어느새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런데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키보드로 글을 쓰는 속도보다 손으로 글을 쓰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키보드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거의 즉각적으로 글자로 옮길 수 있지만, 손글씨는 생각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오히려 한참 뒤처져 있다. 그만큼 생각과 글 사이에는 빈틈이 생긴다. 부지런히 손글씨가 생각을 따라잡는 동안, 그새 생각이 더 깊이 발전해 한발짝 더 움직이기도 하고 다른 관점의 생각이 그 틈으로 끼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더딘 속도 때문에 문장이 채 완성되지 않았을 때,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다 보면 더 괜찮은 표현이 떠오르기도 한다. 생각과 문장 사이의 틈, 다시 말해 문장이 완성되기까지의 지연되는 시간이 오히려 생각과 문장 모두를 발전시킨다.
그래서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을 때 공책에 글을 쓴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려면, 완성된 형태를 감안하느라 더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든다. 글로 적고 싶은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로 단번에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먼저 공책에 자유로운 일기의 형태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공책에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발산하다 보면 좋은 꼭지들이 마련되고, 그 꼭지들을 목적과 흐름에 맞게 선택적으로 엮어 나가면 어느새 글의 개요가 완성된다. 그러면 키보드를 사용해 한 편의 완성된 글로 다시 쓴다. 공책에 자유롭게 일기를 남기고, 일기들의 부분들을 모아 완성된 한 편의 글로 옮기는 셈이다. 손글씨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키보드는 그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유용하다.
다만 공책에도 한계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읽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글쓰기의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일기장을 충분히 읽을 수도 있다. 쓸데없이 잔걱정이 많은 나는 더 안전한 글쓰기 공간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워드 파일이다. 평범한 워드 파일도 아니라, 문서에 비밀번호를 걸어 둔 워드 파일.
워드 파일은 그동안 내가 경험한 글쓰기의 공간 중 가장 높은 보안을 자랑한다. 만약 내가 죽은 후 주변인들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노트북에서 워드 파일을 발견하더라도 문제없다. 아무도 워드 파일을 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휴지통으로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진다. 일기는 자기 자신만을 독자로 상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어떤 텍스트도 쓰이는 순간 자신 이상의 독자를 상정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글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워드 파일은 내가 타인의 시선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멀어질 수 있는 글쓰기 공간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워드 파일의 특징은 키보드로 글을 쓰기 때문에 손이 굉장히 편하다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공책처럼 천천히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기에 좋은 공간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게 워드 파일은 공책과 블로그 사이에 놓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1) 완성된 형태로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2) 손글씨의 힘을 빌려 천천히 생각을 발전시켜야 할 정도는 아니거나, 3) 글이 좀 길어질 거 같아서 공책에 쓰기에는 손이 너무 아플 것 같다면, 워드 파일을 선택한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느냐에 따라 가장 적합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단순히 시기마다 더 자주 찾게 되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늦은 밤에 독서등 하나 켜놓고 천천히 글을 눌러쓰는 시간이 좋아서, 손이 아무리 아파도 공책에 글쓰기를 고집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또 손글씨로 글을 쓰며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더라도, 유난히 한시라도 시간을 아껴고 싶은 시기에는 워드 파일만을 찾는다. 굳이 글을 두 번 거치기 귀찮을 때는 블로그에 바로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한다.
질릴 틈이 없는 글쓰기.. 오늘은 오랜만에 독서등을 켜고 한동안 멀리 했던 공책에 손글씨로 글을 쓰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