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글, 액체 글, 기체 글
좋아하는 시인이 시 쓰기를 주제로 온라인 클래스를 열었다. 한 번은 수업에서 시를 고체 시, 액체 시, 기체 시로 나눠 설명했다. 수업 영상을 보기 전 커리큘럼에서 고체 시, 액체 시, 기체 시란 단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어렴풋이 예상되는 각 시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추측한 기준과 그 시인이 시를 분류한 기준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산문성이 짙을수록 고체 시, 그렇지 않을수록 기체 시에 가까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시어가 얼마나 반복되는지를 기준으로 시를 분류했다.
물질의 상태에 비유해서 시를 분류한 것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시의 물성이 다 다르다는 게 재밌었다. 수업에서도 시인이 각자가 생각하는 분류는 다를 수도 있으니 각자만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수업을 다 듣고 나니 내가 어렴풋이 떠올렸던 글의 상태를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수업은 시 쓰기 수업이니 시를 분류했지만, 글 전반을 고체 글, 액체 글, 기체 글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고체 글의 대표적인 특징은 경제성이다. 고체 글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반적인 비문학 글을 떠올릴 수 있다. 고체는 감각하기 제일 쉽다. 눈으로 확인하고, 손을 뻗어 표면을 만져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들어 옮길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고체 글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 논리적으로 각 문장과 문단이 긴밀하고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단어의 의미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주변의 문맥을 통해 함축적 의미를 쉽게 해석해 낼 수 있다. (내용 자체가 어려울 순 있겠으나) 차분히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필자의 주제 의식에 큰 어려움 없이 다다른다.
액체 글은 경제성보다는 산문성이라는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을 생각해 보자. 소설은 개연성을 갖춘 누군가의 삶, 서사라는 것을 경유한다. 주제의식을 한 번 에둘러 표현하는 셈이다. 고체 글은 부조리한 문제점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겠지만, 액체 글은 그러한 문제점에 놓인 한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을 길게 보여주는 식이다. 액체는 감각하기 쉽지만 고체만큼 원하는 대로 다루기가 어렵다. 무언가에 담아 옮기는 중에 흘릴 수도 있다. 이처럼 액체 글을 읽을 땐 해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모두가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하나의 주제로 명확히 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더해 기체 글은 강한 함축성을 갖는다. 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에 쓰이는 언어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한다. 문장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구성을 이루기도 한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거리가 먼 두 단어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엮이기도 한다. 기체 글은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우며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다양하다. 마치 기체는 잘 보이지도 않고 개인이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일차적으로 고체 글을 읽으면 고체 같은 감상이 남고, 액체 글을 읽으면 액체 같은 감상이 남고, 기체 글을 읽으면 기체 같은 감상이 남는다. 뉴스 칼럼을 읽으면 이 사람이 어떤 근거로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지가 이해되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비교적 명확하고 쉽게 펼칠 수 있다. 반면 시를 읽으면 분명 어떤 느낌이나 감상이 어렴풋이 느껴지는데, 이를 명확히 언어화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사실 나는 두루뭉술한 기체 같은 감상만으로도 시를 즐겁게 즐길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감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시 읽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은 시집 뒤에 있는 해설을 읽고 나니, 앞서 읽었던 시들이 더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해설을 읽는 동안 내 기체 같은 감상이 고체화되는 느낌이었다. 어렴풋이 느꼈던 부분이 명확해지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 생각해 보게 됐다. 액체 같은 감상과 기체 같은 감상을 감각하기 쉬운 고체로 만들어주는 게 비평/평론/해설의 일차적인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기체 같은 감상을 고체화하기'라는 글쓰기 목표가 하나 더 추가됐다. 늘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글을 나누고 싶었는데, 이를 실현하려면 나의 기체 같은 감상부터 고체 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글의 상태 변화를 자유자재로 이끌어내는 작가, 그런 작가를 꿈꾸게 된 것이다. 아직 기체 같은 감상을 고체화하는 능력은 충분치 않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마침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시집 한 편을 다 읽었는데, 조만간 그에 대한 글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