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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Jul 01. 2021

좌충우돌 시골생활 정착기

살 집 마련, 결정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시작은 ‘한옥’이었다. 2012년, 남편은 전라남도의 한옥학교에서 한옥 강사로 일했다.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마치고 막 대학원을 졸업한 시기였다.  갑작스러운 임신. 다섯 시간을 운전해 주말에만 겨우 만나던 롱디를 청산하고 결혼과 동시에 그가 거주하는 전남 영암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시골에서 사는 삶이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지방 출신이고,  힘겹게 상경한 서울살이가 지겨운 참이었고, 조용한 산촌으로 들어가 글이나 쓰며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으니.

 

 그 무렵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한옥마을’이 생겨났다. 우리가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도 전라도의 '한옥마을' 중 하나였다. 무려 200평이 넘는 대지에 34평짜리 신한옥. 누가 들으면 어마어마한 가격의 집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그때 우리 수중에는 오천만 원이 전 재산이었다.  다행히도 지방의 산골은 그 정도 예산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 시세는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서울의 집값 상승률에 비해 지방의 시골은 집값이나 전셋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어렵사리 예산에 딱 맞는 신혼집을 구했다.  월출산이 펼쳐진 황홀한 전경과 널찍한 대지가 있고 듬성듬성 들어선 한옥마을의 목가적인 풍취까지 더해 도저히 그 금액으로 구했다고 믿기 어려운 한옥이었다. 게다가 불편한 구옥이 아닌 세련된 신한옥이라서 내부는 흔히 보던 현대식 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짜인 구조였다.

  

  “어떻게 이런 집을 구했어요?”

 남편에게 물으니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응, 인터넷으로.”

  그렇다. 남편은 신혼집을 인터넷을 보고 구했다.

 한옥 신혼집

  우리가 정착했던 시골은 당시만 해도 현대식 부동산중개소가 없었다. 읍내에 간판이 걸린 부동산은 옛날 ‘복덕방’ 수준이었고 마음의 맞는 매물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우리는 인근 지역의 부동산을 몇 군데 둘러보다가 결국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갔다.

 ‘새로 지은 신한옥 전세 내놓음.’

  한옥 강사인 남편은 ‘한옥’이란 단어에 꽂혀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집주인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고 일사천리로 전세 계약을 마쳤다. 집주인은 근방의 대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거주하는 30대의 젊은 부부였다.

  

  부동산 투자 감각이 남다른(?) 젊은 부부는 투자가치를 고려하는 것과 동시에 노년의 전원생활을 꿈꾸며 군청의 지원을 받아 근사한 한옥을 지었다. 당시만 해도 군청은 한옥마을 조성을 위해 한옥을 신축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의 지원금을 지원해줬고 우리가 이사한 한옥마을도 그렇게 생성된 곳 중 하나였다.

  

  이사한 한옥마을의 주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집을 짓고 금방 입주한 분들도 있었지만 그런 분들은 거의 은퇴를 마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젊은 집주인들은 삶의 터전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라 쉽게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결국 새로 지은 근사한 한옥을 꽤 오랜 기간 빈집으로 방치하고 있다가 전세를 내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이 한 번도 살지 않은 새 한옥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아마도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귀촌과 동시에 전원생활을 꿈꾸며 집을 짓거나 구매하는 것이 아닐까. 집값이 도시만큼 비싸지도 않고 시골에선 전셋집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예 사버리자!' 혹은' 집을 짓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덜컥 시골에 집을 장만했다가 사정이 생겨 다시 집을 팔려고 할 때는 적정 가격에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과는 다르게 시골의 주택은 쉽게 매수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단 집을 사고 나면 집값 상승률이나 하락률은 아예 신경을 꺼야 한다. (엄청난 호재가 있지 않는 이상 십 년이 지나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 로망만 쫓으며 집을 사기엔 주택마련은 꽤 큰돈이 오간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을 모은 돈이 전부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지역에 뼈를 묻을 각오가 아니라면 굳이 처음부터 집을 살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귀촌할 집을 구할 방법은 많다. 인구가 줄어든 지방은 우리의 경우처럼 빈집으로 방치된 좋은 집들이 꽤 많다. 대부분 전원생활을 꿈꾸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간 경우이거나 세컨드 하우스의 개념으로 집을 사둔 경우이다. 이런 집은 급매로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매매가 안 될 경우에는 꽤 저렴한 시세에 전세나 월세로 전환을 한다.


  게다가 시골은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주택도 흔하다. 요사이 많은 읍단위 지역에서 인구 유입 정책의 수단으로 빈집을 활용한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빈집에 새롭게 입주할 희망자를 선별해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럴듯한 집으로 수선해주고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도 펼친다. 찾아보면 이것 외에도 청년이나 귀농인들을 위한 정책적인 사업은 많을 것이다. 그러니 귀촌을 결심했다고 무작정 집부터 사는 일은 만류하고 싶다. 결정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일단 저렴한 방식을 찾아 그 마을에서 좀 살아보고, 평생 살아도 좋다는 결심이 섰을 때 찬찬히 살 집을 알아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도시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은 한 번쯤 전원의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진짜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힐링이나 여유만 찾고 삶의 거처를 옮기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길고 현실은 혹독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가겠다는 마음의 각오가 서면 기본적인 호구 대책은 세워야 한다. 최소한 귀촌을 결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만이라도 스스로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골생활의 언덕에서 마주치는 생각지 못한 변수에 좌절하지 않고 적응해 나갈 수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계획표를 열심히 짜도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변수는 어디에서고 툭툭 튀어나온다. 자기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실용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시골에서 잘 사는 방법을 상세히 알고 있지는 않다. 애초에 귀농을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고,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시골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컸는지도 모른다.

 

  외로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뿌리 깊은 고독감, 타지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인연과 서로의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인정, 시작부터가 막연한 먹고사는 문제, 자연경관이 주는 황홀감과 하루의 끝에 어찌해볼 도리없이 찾아드는 우울감,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시골에서 살며 느끼고 경험했던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물론, 로망으로 가득 차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단 하나도 계획에 없던 일이다.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그럭저럭 잘' 적응한 시골생활자가 되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지난하고 아름다웠던 과정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나는 찬찬히 기억의 파편을 꺼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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