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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Jul 08. 2021

시골의 겨울나기

도시가스 배관공사를 보고 떠오른 연탄난로의 추억

  초여름 태풍에 기왓장이 몇 개 날아가긴 했지만, 거실에 에어컨을 들이지 않아도 한옥의 여름은 더없이 좋았다. 사방이 뚫린 시원한 구조 덕분에 한여름 동안 거실 바닥에 누워 한량처럼 계절을 만끽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만 해도 아무런 불편 없이 마냥 행복했다. 짙은 녹음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고, 지독했던 모기와 벌레도 차츰 사라지는 계절이었으니 가을이야말로 집 주변을 산책하며 유유자적하게 지내기 딱 좋았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한옥의 겨울은 혹독했다.  대책 없는 추위보다 무서운 건 시골 보일러의 난방비였다. 내가 정착한 영암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난방 소외 지역이었다. 원체 추위에 약한 체질이라 아파트에서 살 때는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집안 난방을 세게 작동시켰다. 가스비가 다른 집보다 조금 오버되긴 했지만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골 한옥의 겨울은 아파트와 차원이 달랐다. 나무 틈에서 들어오는 외풍과 마당만 나가도 뺨을 아린 칼바람까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이사한 한옥은 서까래가 노출된 높은 천장 때문인지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더운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집안 전체 난방을 쉬지 않고 가동하자 얼마 가지 않아 금방 기름이 바닥났다. 주유소에 전화를 해서 기름 한 드럼에 얼마냐고 물었다. 무려 2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나는 기름보일러의 연료가 그렇게나 비쌀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우리 집은 기름 한 드럼이 보름도 채 못 가는데 다른 집은 같은 양으로 한 달도 넘게 버틴다고 했다. 그동안 그렇게 춥게 지냈는데도 헤프게 기름을 쓴 것이라니, 기가 막혔다. 이렇게 가다가는 남편 월급을 몽땅 기름에 쏟아부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우리는 거실과 방 두 개의 난방을 끄고 주로 생활하는 안방만 난방을 돌리는 것으로 추위를 버텼다.


  겨우내 어찌나 춥게 지냈는지 아침에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거실로 나서기 전에는 바깥으로 외출하는 것처럼 단단히 잠바를 걸쳐야 했다. 새벽 무렵엔 거실에서도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실내 추위였다. 나는 그때서야 거실 한쪽에 세워둔 벽난로가 보기 좋은 장식이 아니라 전원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필수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둘러 장작을 패고 벽난로를 작동시켰다. 벽난로 덕분인지 거실 공기가 조금 훈훈해졌지만 아파트에서처럼 따뜻하게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해가 지나자 지난해까지 잘 작동하던 벽난로도 성능이 시원찮았다. 연통을 제때 청소하지 않아서인지 애초에 고장이 잦은 제품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벽난로를  때마다 집안에 연기가 가득 찼다. 연기도 연기지만 때마다 땔감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남편은 며칠을 벽난로와 씨름하다가 결단을 내린 듯이 집안에 연탄난로를 들이자고 제안했다. 지금이 무슨 70년대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연탄난로라니. 나는 남편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연탄난로의 수고로움보다 겨울의 추위가 더 공포였다.


  남편은 다음 날 인터넷으로 연탄난로와 연통을 샀다. 옛날과 다르게 최근에 나오는 연탄난로는 위험성이 낮고 크기가 줄어들었다. 혹시나 연탄재가 바닥에 떨어질까 봐 난로 밑에 커다란 철판까지 깔았다. 어린아이와 고양이들의 화상을 염려해 난로 주변에 펜스도 설치했다. TV와 가까운 장소에 난로를 놓고 연통을 거실 밖으로 빼서 설치를 마감하고 보니 그럴듯한 난방시설이 완성됐다. 집안에 무슨 연탄난로냐고 불평을 늘어놓던 나는 금세 신나는 얼굴로 주전자 한가득 물을 받아 난로 위에 얹었다.


  연탄난로는 내 예상보다 난방 능력이 탁월했다. 난로 주변의 훈훈함과 주전자 물의 뜨거운 김 덕분에 금방 집안이 따뜻해졌다. 그때부터 남편은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새벽마다 일어나 연탄을 가는 수고를 자처했다. 나는 남편에게 연탄 가는 방법과 집게 사용법을 배우고 식칼로 서로 엉겨 붙은 연탄을 떼어내는 잔기술도 배웠다. 엄마는 오랜만에 딸네 집에 들렀다가 연탄난로를 보고 기겁을 했다. "너는 어째 나도 생전 안 갈아본 연탄을 갈고 사냐"며 핀잔했다. “엄마, 이게 이래 봬도 얼마나 따뜻한데.” 나는 연탄집게로 연탄을 갈면서 눈을 흘겼다. 고양이들은 시시때때로 난로 주변에 모여 몸을 녹였다.


  나는 뜨거운 김을 내뿜는 주전자 물로 차를 우려 마셨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창고에 가득 쌓인 연탄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높은 건물이 없어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엔 어딜 가나 추위가 극성이다. 또 시골에서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시의 사람들보다 전체 소득이 적고 노인들이 많아 연령층도 높다. 농사를 짓는 분들은 겨우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다. 그런데도 시골의 난방 시설은 도시보다 훨씬 열악하고 난방비도 몇 곱절이나 든다.


   물론 많은 도시가스 미공급지역에 아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수요 대비 투자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시장논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업성은 물론이고 배관공사 문제와 주민 동의 그리고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공사비까지 계산하면 시골에 도시가스를 들여놓는 일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시골에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더 적게 벌고 더 불편하게 생활하는데도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이다. 옛날 광고처럼 “어머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만으로는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애초에 난방비가 비싼데 보일러만 좋아봤자 따뜻하게 지낼 수가 없다. 왜 편리하고 저렴하고 안전한 난방 시스템은 젊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만 집중되는 것인지, 나라에서는 난방 소외지역의 도시가스설치 시설사업을 공익사업에 추가할 수는 없는 것인지, 따위의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도시에서 살면서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의문이었다.  


  지난봄, 우연히 실내체육관을 지나다가 도시가스 배관공사 때문에 도로가 통제된 것을 보았다. 다행히도 영암은 근래에 도시가스 사업을 유치하고 내년 상반기 도시가스 공급을 목표로 파이프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연탄난로 위의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서글픈 마음으로 연탄재를 치우던 겨울이 떠올랐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도 지금은 연탄난로가 아련한 추억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때는 혹독함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낭만으로 둔갑해버리는 시간의 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농촌지역에서는 도시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많은 수고를 거치며 겨울을 난다. 언제쯤  모든 지역에서 돈 걱정 없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결코 그 해 겨울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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