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풍경을 보는 시간
시골생활 초기의 외로움에 대하여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고대 시인 침연의 시 중 한 구절
김경주 「드라이아이스」 中
여름 무렵 나는 시골에 혼자 남겨졌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시골로 들어왔건만 갑자기 남편의 일터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남편과 나는 다시 주중에는 떨어져 있다가 주말에만 만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읍내와 외따로 떨어진 마을에서 아는 이 하나도 없이 홀로 지냈다. 차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 있자니 섬에 갇힌 기분마저 들었다. 혼자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차려 먹고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밖으로 나와 텃밭을 가꾸다가 해가 뜨거워지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까지 소소한 집안일을 하며 태중의 아기를 위해 태교용품도 만들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같은 날을 연속해서 사는 형벌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없이 무한한 시간을 유유히 헤엄치며 죄책감 속에 하루를 낭비했다.
시골에 혼자 있는 동안 매일 글을 쓰겠다는 계획은 멀리 사라지고,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면 처마 밑에 의자를 놓고 멍하니 앉아 하늘을 구경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다가 보랏빛으로 변하더니 어스름한 푸른빛을 띠면서 밤으로 변했다. 거의 매일 해가 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뎌진 현실 감각과 사회와 차단된 외로움, 거기다 임신 호르몬까지 겹쳐 짙은 우울감이 찾아왔다. 오로지 해가 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자연과 가까워지는 순간에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세상의 수많은 미물 중 하나이고,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는 찰나를 지켜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배웠다. 그것이 그 시절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이자 유일한 치료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집안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어디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이른 아침,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동네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걸어 대로변에 서서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시골의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었다. 한 시간에 두어 대가 전부였다. 그때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길가에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새댁!” 슈퍼집주인 아주머니가 문밖에 서 있는 나를 불렀다. 주위에 나밖에 없었고 배가 봉긋한 임산부였기 때문에 ‘새댁’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 분명했는데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것 좀 먹어봐.” 아주머니는 가게 안에서 옥수수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옥수수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어디서 살아?” 오랜만에 나의 거처와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었다. “저기 새로 들어선 한옥마을에 살아요.” 나는 옥수수 알을 뜯으며 대답했다. 아줌마는 나의 거주지를 확인한 이후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주로 사는 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물었는데, 한옥은 가격이 얼마인지, 자가인지 전세인지, 전세라면 얼마에 들어왔는지 같은 거였다.
한옥단지 바로 옆에는 오래된 터주 마을이 자리했다. 동네 입구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고 안쪽으로 방앗간과 구멍가게, 식당 하나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었다. 슈퍼집 아줌마를 통해 짐작컨대 마을 사람들은 새로 입주한 한옥마을을 몹시 궁금해했다. 그곳에는 누가 사는 것인지, 그렇게 큰 기와집들은 도대체 얼마나 하는지, 무슨 일을 하며 왜 거기서 사는지 같은 질문들. 아주머니는 마침 한옥마을에 산다는 나를 만나고 신기하고 반가운 듯 오랫동안 질문을 이어나갔다. 나는 대체로 ‘모르겠어요’ 같은 단답형의 대답과 ‘글쎄요’ 하는 애매한 반응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음료수까지 건네주며 버스가 올 때까지 내 옆을 지켰다. 나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를 탔다. 친절과 무례를 넘나드는 분이었지만 어쩐지 밉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구림마을’에서 내렸다. 지역의 대표 관광지이자 농협 마트가 자리한 나름 큰 마을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약국과 농협 마트, 보건소, 커피숍까지 있어서 기분이 들떴다. 오랜만에 집을 나와 사람을 만나고 상점을 구경하니 비로소 내가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집 안에만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던 생동감이었다. 과연 인간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주고받는 소통을 할 때야 비로소 활력을 얻는다. 그동안 오롯이 혼자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넘치게 많았지만 대부분을 우울 속에 파묻혀 살았다.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사회적 동물임을 처음으로 절감했다. 슈퍼 아주머니와 나눈 잠시간의 대화로도 함몰된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왔고, 집 밖을 벗어나 마을 거리를 걸으며 현실 세계에 안착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나를 괴롭히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혼자 있을 때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꾸만 깊이 그쪽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후까지 마을 구경을 하고 가게에 들어갔다. 그동안 과일이 먹고 싶어도 차가 없어 마트에 갈 수 없으니 남편이 오는 주말까지는 꼼짝없이 참아야 했다. 버스를 타고 마을로 나오니 드디어 혼자서도 과일을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커다란 수박을 안고 계산을 했다. 계산하는 동안 상점 거울에 봉긋하게 배가 부른 임산부가 수박을 든 모습이 비쳤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방금까지는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거울을 보고 문득 서글퍼졌다. 나는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커다란 수박이 거추장스러웠다. 배가 불러 왼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박을 든 채로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집에 도착해 수박을 내려놓고 처마 밑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야, 시간이 어서 흘러 네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거야.”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 그때부터 독박 육아 전쟁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어서 나오라고 재촉했다.
그때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 생활이 그저 세상의 시끄러운 것들과 멀어지고 자연을 벗 삼아 오롯이 혼자 고요와 평화를 만끽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외부와의 차단은 우울과 무기력의 지름길이었다. 당시의 나는 시골에 내려온 소기의 목적도 없었고, 주변을 탐색할 환경적 조건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물론 그 막막한 몇 달간의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키운 일면도 있다. 나는 그곳에서 혼자서 사는 법을 배웠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오로지 나 자신하고만 이야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독과 우울을 느꼈지만 해 질 무렵의 자연과 노을을 보며 마음을 치유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며 외부와 교감을 하는 행위로 안정과 일상의 질서를 유지한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말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정교한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의사를 표현하는 일 자체로 우리는 얼마간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글을 쓰고 말을 해야 시끄러운 속이 진정되는 나 같은 수다쟁이는 더욱 그렇다.
내가 시골의 일상에 스며들며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이년쯤이 지난 이후이다. 그 후 아이를 낳고 남편은 다시 시골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돌봄 기관에 보내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시골이라고 도시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에는 적당한 갈등과 이해관계도 존재했다. 사람에 치일 땐 오롯이 혼자 존재했던 시간들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글쎄, 나는 아마 고개를 저을 것이다. 나를 번민케 하는 가장 큰 실체가 '혼자'라는 섬 안에 갇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