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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Jul 02. 2021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말

텃밭 가꾸기의 어려움에 관하여

  이사 후 봄이 찾아왔다.  뒷마당은 경작을 해도 남을 만큼 평수가 넓었지만 도무지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아 텅 빈 초원으로 비워뒀다. 무성한 풀은 무섭게 성장해 어느새 키만큼 자랐다. 나는 가끔씩 뒷마당을 둘러보며 풀이 가진 야생의 힘에 감탄했다. 한차례 비가 올 때마다 풀밭은 한 뼘씩 자랐고 부러 심지도 않은 갖가지 야생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여름이 다가오자 초원은 정글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온갖 벌레와 곤충이 날아다녔다.  잡풀의 엄청난 번식력과 너른 면적에 질려 그곳에 뭘 심어보겠다는 계획은 아예 깨끗이 포기했다. 대신 만만한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텃밭에 상추, 가지, 토마토 같은 유용한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한쪽 구석에는 바질과 로즈메리 같은 허브도 추가했다. 한동안 그것들을 돌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느라 온종일 텃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초보 가드너 노릇이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매일 잡초를 뽑아도 다음날이면 다시 새로운 풀이 고개를 내밀었고,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모르는 해충과 진드기가 애써 키운 작물을 볼품없게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도 어찌나 공이 들어가는지 나는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임신 중기에 들어서면서 배가 부쩍 나와 텃밭에 오래 앉아있지도 못했다. 초여름 뜨거운 햇볕에 머리가 핑 돌아 현기증으로 쓰러질뻔한 경험을 한 후로는 나는 그만 삽자루를 던져버렸다. 농사는 정말이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고작 마당 한편에 있는 몇 평짜리 텃밭을 가꾸면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간혹 도시에서 놀러 온 지인들이 '시골에서 한가롭게 농사나 지으며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농사나 지으며’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깊이 생각지 않고 별 뜻 없이 그냥 던지는 말이 분명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저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다는 순수한 소망이 나에게도 있었다. 소망과는 다르게 마당 농사를 실패한 후로는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순진한 말이 어쩐지 얄밉게 들렸다. 

  

  영암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농사가 업인 사람이 많다. 시부모가 하는 감농사를 돕거나, 하우스에서 멜론을 키워 팔거나, 그저 땅이 노는 게 아까워 소일 삼아 채소라도 심어 팔거나. 어찌 됐든 그들은 땅을 밑천 삼아 먹고 산다. 복지관 수업에서 만난 미정 언니는 하우스가 바쁠 시기엔 좋아하는 요가 수업도 빠지고 하우스에 들어가 살다시피 한다. 일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자투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농기계 다루는 일부터 농작물 관리는 물론이고 농협에서 진행하는 행정적인 작업이나 군에서 지원받는 사업 내용까지 꼼꼼하게 준비한다. 주말도 없이 일 년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새롭게 시작한 작물은 서 너번 실패를 맛본 후에야 업으로 삼을 만큼 수익이 난다. 고되고 힘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인지 깨닫게 됐다. 기껏 텃밭을 가꾸는 일도 그렇게 힘들어 골병이 날 판인데, 직업으로 농사를 짓는 일은 오죽할까. 

  

  나는 텃밭에 발길을 끊고 간간이 음식물쓰레기를 묻을 때만 마당을 찾았다. 텃밭이 있던 자리에는 온갖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실패한 낙오자의 마음으로 힐끔힐끔 텃밭을 훔쳐보다가 어느 날은 풀밭 사이에 빨간 토마토가 무더기로 매달린 것을 발견했다. 돌보지 않았는데도 토마토는 어느새 스스로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반가운 마음에 토마토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모양새는 울퉁불퉁 못났지만 분명 내가 아는 그 토마토였다. 토마토의 냄새가 얼마나 진하던지 금방 손 끝에 청량한 토마토 냄새가 묻어났다. 


 자세히 둘러보니 토마토뿐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상추도 무성하게 자랐고 아무렇게나 씨를 뿌려둔 허브도 부쩍 영토를 넓혀 여기저기 퍼졌다. 나는 싱그러운 로즈메리 이파리를 꺾으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향기가 기가 막히게 시원하고 상쾌했다. 봄에 심어 둔 허브와 채소 모종이 기특하게도 저 혼자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어머, 너네 진짜 용하다.  나는 진실로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했다. 

  

  그 후로도 종종 도시 손님이 방문할 때마다 텃밭으로 달려가 상추를 땄다. 시기에 맞춰 수확하지 않아 상추는 맛이 쓰고 식감이 뻣뻣했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게으름을 자연산 무농약으로 포장해서 말했다. 친구들은 잡풀과 어울려 들쑥날쑥한 채마밭을 보고 깔깔거렸다. 여름밤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고 고기 파티를 벌인 날에는 어쩐지 마음이 들떴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간의 노력과 힘이 들어간다. 그래야만 수확을 얻고 이익이 남는다. 서비스업이건, 영업직이건, 생산직이건 간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그 분야에서 살아남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농업도 마찬가지이다. 요새는 기계를 이용한 새로운 농법도 많기 때문에 젊은 농부들은 더 바쁘고 공부할 게 많다. 

 

  모든 직업은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끊임없이 발전한다. 농사 역시 다른 업종과 다를 바 없이 시대에 맞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 일이다. 오늘날에는 순전히 사람 손으로만 짓는 농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의 영역에 로봇과 기계가 들어오고 새로운 생명공학적 기술과 신분야의 농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함부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라고 쉽게 말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농업이 미래 부가가치가 밝은 분야로 떠올랐고 학계에서도 새롭게 농업의 가능성을 논한다. 게다가 그 어떤 업종보다 공들인 만큼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기도 하다. 일이 재밌어서 멜론 농사에 올인 한 미정 언니네는 일 년에 수억 원을 벌어들이는 알부자로 소문난 젊은 농사꾼이기도 하다. 그들은 농사가 단순히 이익만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키워내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나 그런 성공신화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작은, 타고난 성품이 부지런하고 농사가 적성에 맞아야 가능하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고작 바비큐 파티용 수확에도 감지덕지다. 어쨌거나 모종을 심고 매일 물을 주고  퇴비를 묻어 넣는 초반의 수고가 헛되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가 뭐 농산물을 수확해서 시장에 내다 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고기를 구울 때마다 웃자란 상추를 땄다. 나는 일찌감치 내 게으름과 직업적 부적격을 알아보고 텃밭 농작을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이 야속하게 들린다. 어쩌면 직업으로서의 농사가 만만치 않다는 깨달음 이외에도 그 만만치 않은 일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질투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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