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건쌤 김엄마 Dec 18. 2021

만지면 안 돼

태어나고 자라고 겪고 느끼는 건 비슷비슷해. 대응방식이 조금 다를 뿐!

  "아 짜증이 나요! 요즘 너무 팍팍해요. 옛날이 좋았어요. 어렸을 때, 그때가 좋았어요. 애들이 좀 무서워요. 나를 무시해요. 안 놀아주고 다들 바쁘니까... 나만 외톨이 같아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아이가 있다. 신체 건강하고 인사성도 밝다. 그러나 정신 지체가 있고, 얼굴 골격에 구조적 결함이 일부 있어 발음이 조금 어눌한 특수학급 학생이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행동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질문에 대답하고 적절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초등 4~5학년 정도 되는 것 같고, 달리고 운동하는 능력은 아주 좋은 편이다. 부조화가 있다 보니 답답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호기심이 많아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지만, 집중력과 이해력이 낮아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다. 단순한 수작업이나 몸으로 하는 활동들은 즐거워하며 잘하는 편인데 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기초능력 신장과 사회적응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따뜻하고 재미난 교육을 받았지만 일반고등학교 내 통합반의 경우 공부하느라 바쁜 동급생들 사이에서 애매한 감정을 느낄 만도 해 보인다. 어느새 어른처럼 커져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나름의 고민을 할 것이다. 지능이 조금 낮아도, 신체의 불편함이 다소 있어도 자아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한 고뇌를 당연히 거치고 사춘기도 물론 겪는다.




  요즘 부쩍 보건실 출입이 잦다.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행동도 부산하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친구들이 자신은 끼워주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동네 놀이터 가서 놀고 있는 꼬마들에게 같이 놀자고 하면 애들이 피한다며 불평한다. 이런저런 불평불만도 늘었고 어떤 면에서는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을 하면서도 당장 주말에 뭘 하고 놀지 고민도 한다.


  몇 마디 하다 보면 유난히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마주하려 하고 바로 옆에 딱 붙어 앉아 팔이나 손의  접촉을 하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 있는 학생이지만 조금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충전 중인 내 휴대전화를 덥석 집어 들고 사진을 본다던가, 내가 기록한 메모수첩을 읽기도 한다.


  서너 번 행동 양상을 지켜보다가 명확히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픈 학생이 안정을 취하는 곳이니 큰소리로 떠들지 않기. 둘째, 선생님의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지 않기. 셋째, 사회적 거리 지키기.

 

  신체 접촉과 물건의 터치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단호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회기술이 조금 부족하여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라면 단호하면서도 온정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해력이 좋고 눈치도 빠른 아이다. 신체는 어른이 되어가지만, 마음과 정신은 초등학생 어느 학년 즈음에 머물러 있다 보니 스스로도 한계에 부딪혀 답답해할 때가 많은 것 같았다. 곧 성인이 되어 소속감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점에 대해서 두려움을 자주 표현하기도 한다.


  특수학급 선생님과 의논했고 학교 학급 담임선생님과도 상의했다. 학생에게 서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제한점은 명확히, 에너지 분출을 위한 활동의 기회를 많이 주기, 힘들어하는 부분을 공감해주기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눈 맞추고 끄덕이며 진지한 대화를 마쳤지만 이 녀석... 보건실을 나가는 발걸음에 "아~~~ 배고파요. 햄버거 사주세요."라고 한다. 이 녀석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