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심한 생리통인 줄 알았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펴보리라

by 보건쌤 김엄마

<남녀공학 OO고>

그러나, 남학생 수보다 여학생이 많은 학교이다.


안지현! 이름을 잊지 않는다. 안지현!




119번 보건실 전화벨이 울리고 "안녕하십니까? 보건실입니다."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 번호는 205. 2학년 5반 이하얀쌤. 깐깐한 과학쌤이다.


"보건선생님, 이하얀인데요. 저희 반 안지현 학생이 지금 배가 아프다며 교실에서 쓰러졌다고 해요. 애들이 지금 부축해서 보건실에 가고 있대요, 저도 바로 내려 갈게요. 잘 좀 살펴봐주세요."


왜 쓰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곧바로 응급 물품을 꺼내두고 혈압계와 O2(산소) 마스크, O2 saturation 측정기(산소포화도 체크용 기계) 등을 준비해두고 휠체어를 빛의 속도로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학생 둘이서 지현이를 부축하고 서있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지현이를 일단 휠체어에 태웠고, 부축해준 학생들은 교실로 올려 보냈다. 의식이 없거나 혼미한 상태가 아니었고, 묻는 말에 대답을 바로 하는 정도였으니... 병원에서나 있을 법한 진짜 쓰러진 환자의 상태는 아니었다!


침대에 다다르니 스스로 엉거주춤 침대로 옮겨갔고 털썩 눕던 지현이. 다행히 v/s(vital sign: 혈압, 호흡, 맥박, 체온), 동공까지 모두 안정적이었다. 눈은 감고 있었고 묻는 말에 대답은 했다. 기운이 없었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유를 파악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일이 남아있을 뿐.


담임 선생님이 오셨고,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지 몇 마디 나눈 후 종 치자마자 올라가셨다. 학생을 잘 부탁한다고 하시며, 교실로 올라갈 때 전화만 한번 달라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다.


보건실에 수액이 있으면 하나 주고 싶었지만, 수액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고, 병원에서 하는 처치이므로 보건실에서는 불가능하다. 포도당 사탕을 하나 먹이고 배가 아프다고 하여 소화 효소제와 복통약을 한알씩 먹였다.


심한 생리통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창백한 얼굴로 배를 부여 쥔 채 어지럽다고 했다. 그러나 생리통인지 묻는 나에게 그건 아니라고 손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혈압도 115/70mmhg 정상.




따뜻한 찜질팩을 배에 대주고, 식사를 거르지는 않았는지, 잠이 부족했는지 등 왜 아픈지 체크를 해나갔다. 마스크를 쓴 채 귀찮은 듯 이불을 덮어버리고 그냥 좀 자고 싶다고 했다.


휴우 그래. 좀 쉬자. 쉬어보자.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정말 의식이 없이 쓰러진거였다면 119에 도움을 요청하여 이송하고 그 후에... 상상만 해도 까마득하고 소름이 돋았다.


중간중간 살펴보니 여전히 v/s(활력징후, vital sign)은 안정적이었고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처음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있더니, 깊이 잠이 들어서인지 이불을 내리고 폭폭 푹푹 풀풀 툴툴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를 무렵, 마스크를 벗고 잠든 그녀에게서 조금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코끝을 살짝 찌르는 알코올 냄새. 윽... 설마... 질병 중에도 간혹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증상이 있고, 또 보건실의 소독용 알코올 냄새일 수도 있으니 섣불리 오해하지 말자~ 그러나, 다가가 보니 학생의 입에서 정말 술 냄새가 났다. 이런


sticker sticker


40분쯤 지나고 수업 종이 칠 무렵 지현이를 깨웠다. "잘 쉬었니? 몸은 좀 어떠니? 곧 종칠 것 같아. 좋아졌으면 이제 곧 교실에 올라가도록 하자."


"선생님, 그냥 저 수업 빠지고 한 시간만 더 잘게요. 속이 안 좋아요." 눈을 반쯤 뜬 채 말한다.


"지현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건실엔 한 시간만 있을 수 있어. 휴식해보다가 좋아지지 않으면 조퇴하고 병원에 가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무단 결과 처리가 되거든. 컨디션이 많이 안 좋니?"


"네에, 쏠려요. 토할 것 같아요. 어지러워요."


"지현아, 미안한데 있잖니. 이야기할 때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아. 너 혹시 술을 마셨니?"


sticker sticker


학생의 반응은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민망한 듯 부끄러워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정반대였다.


술을 좀 마셨고, 백일주는 고3에게 허용되는 술이라는, 속이 안 좋으니 말을 더 하면 토할 것 같다며... 이불을 뒤집어써버렸다. 술을 마셨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았고, 말을 시키지 말아 달라고...



지현이는 그로부터 20분쯤 더 누워있었고, 별 이상이 없어 곧 학생을 교실로 올려 보내겠노라 담임교사에게 전화했지만 술 언급은 하지 않았다.


수업 종이 울리고 입실하지 않은 채 15~20분이 경과하면 그다음 수업까지 결과 처리되므로 바짝 깨워 쫓아 보냈다.


아플 땐 보건실에, 많이 아플 땐 두 시간도 있게 해야 하겠지만 학생이 술을 마시고 속이 안 좋다고 보건실에 머무는 모습은 봐줄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라!"


그렇다고 학생에게 험한 말은 하지 않는다. 이유가 어떻든 저 학생의 컨디션이 나쁜 건 사실이니까.


국어쌤이 사둔 한라봉차 댓 병을 꺼내어 미지근한 물에 꿀물 타듯 개었다. 정성은 넣지 않았고, 짜증스럽게 툭 한 숟갈 털어 넣어 대충 탔다. 얼른 정신 차리라고, 너 정말 이러는 거 아니야...라고 잔소리하며.


"지현아, 이거 마셔. 술은 마시지 않으면 좋겠다. 술 마신 후에 이렇게 몸이 안 좋아졌잖니.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앞으로 기회가 많아. 천천히 배우고 즐기면 더 좋을 것 같아. 어서 이 차 한잔 마시고 올라가자. 이하얀쌤한텐 암말 안 했어. 마스크 잘 끼고 지내라."



학생 음주실태와 일탈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보건 교과서와 보건수업에 필수 교육으로 등장하는 음주, 흡연 그리고 성교육. 아이들의 경험과 지식은 초스피드로 진화했는데 학교에서의 보건교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 기자재와 도구의 보충, 보건교사 연수 등을 통해 수업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만족스럽지 않다.


술 냄새가 나는 여학생은 그렇게 올려 보냈다.

어디가 많이 아파서 진짜 쓰러진 학생처럼 교실 가는 길까지 휠체어를 태워줄 수는 없었다.


고약한 녀석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었다. 두통과 감기 기운을 호소하며 힘들어하는 학생을 쉬게 해주었는데, 전날 밤 함께 술을 마신 친구 데리러 와서 알게 된 일도 있었다. 으으윽 내 돌봄과 배려에 대해 그때 느낀 그 배신감이란...


아무튼 복도 난간을 잡고 휘청이듯 아주 천천히 걸어가던 지현이. 풀어헤친 긴 머리, 길이를 줄여 입은 교복 치마, 에라 모르겠다. 휴우 안녕



keyword
이전 01화청소년들의 어설픈 성(性)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