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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요리 전시회 Part. 1

Ep. 12 삶의 변화, 요리의 진화, 가정의 평화

누구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혼잣말은 아니다.


'나의 글은 브런치에 연재되고 있다.'


사회생활을 끝내고 세상과 단절된 시점으로부터 내가 정한 아주 특별한 날까지 

소소하고 아름답게 보냈던 시간들을 쪼개어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여하튼,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주부가 되었고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가 최대 과제가 되었다.

초보 요리사에게 삼시 세끼는 끝없이 밀려오는 적군과도 같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계획을 세웠다.

요리의 기본적인 방향은 세 가지 정도로 설정했다.


1.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 없는 일체형 한 그릇 요리

2. 조리방법이 간단하고 약간의 응용으로 가짓수를 늘릴 수 있는 요리

3. 자극적이지 않은 일본요리를 바탕으로 가족들에게 새롭고 특별한 이미지 구축


첫 요리는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Ep. 6)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 '오차즈케(お茶漬け)'였다.

기본 육수에 밥을 넣고, 연어구이나 명란을 얹어먹는 부담 없고 간단한 요리였다.












기대 이상으로 맛을 인정받은 후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일식 요리사라도 된 것처럼 이웃 나라의 새로운 맛의 세계를 탐닉해 나갔다.


또 다른 간단 요리는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오니기리(おにぎり)를 선보였다.

그들만의 삼각김밥이라고 이해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삼각형의 형태를 잡는 것조차 힘들었다.

현재 일본어를 독학 중인데 유튜브 속 아름다운 선생님이 일본 자취 시절 만든 레시피를 참고했다.

부엌에 들어간 지 2일째 결과물이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한없이 부끄럽다. 이건 자폭이다.  

굳이 이따위 것을 올려야 되나 싶지만, 나는 지금 '초보 요리 전시회'라는 글을 쓰고 있다.

뜨거운 밥에 김이 눌어붙어 쪼그라들었다. 

편의점의 삼각김밥처럼 매끈한 마무리를 상상했던 나는 몹시 당황했다.

곧바로 떼어내려 했지만 밥풀 30여 개가 따라 나와 달걀과 베이컨이 들어있는 속살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붙이고, 두 번째는 파슬리 가루로 만회하려 하였으나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런 데커레이션이 없는 세 번째가 그나마 괜찮아 보인다. 맛은 모두 합격!


이후, 어지간한 물건은 다 있다는 그곳에서 틀을 구매한 후 사각 오니기리로 진화시켰다.

이것도 모양은 그리 잘나 보이지 않지만, 반사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달걀, 베이컨, 치즈가 들어갔고, 밥에는 간장, 맛술, 참기름, 혼다시(ほんだし),갈아 넣은 깨가 혼합되어 있다.

아이들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보통의 삼각김밥보다 양이 더 많다.

부담스러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주로 등판한다. 

적당히 든든하고 적당히 맛있다. 


다음은 한 그릇 요리의 대명사 '부타동ぶたどん [豚丼]'이다.

일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돼지불고기 덮밥' 정도로 생각했지만 

집에서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경우 상당한 장점이 존재한다.

일단, 고기를 단순하게 구워주는 것이 아니기에 뭔가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우쭐해진다.

그리고, 부타동 한 그릇에는 양파 반 개와 상당량의 마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비빔밥처럼 섞거나, 요리사의 정성을 생각해서 있는 모습 그대로 먹거나 상관없이

영양만점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일석삼조의 특별함이 있는 메뉴라는 것이다.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가 들어가면 '오야코동おやこどん [親子丼]' 

소고기가 들어가면 '규동 ぎゅうどん [牛丼]'이 된다는 것이다. 

레시피도 거의 비슷해서 레퍼토리가 부족한 초보 요리사에게는 천군만마라 할 수 있다.

닭을 넣은 오야코동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부모 자식 덮밥' 정도 된다. 대표적인 일본 가정식이다.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수준급 비주얼을 자랑하는 예시가 많이 있다. 

이런 겉모습에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울 뿐이다. 


이번에는 일본에 있는 중화요리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메뉴인데 정작 중국에는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이 중국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려니 생각했다. 

역시나 초간단 한 그릇 요리이며 제목은 '텐신항 てんしんはん [天津飯]'이다.

식구들의 입맛에 맞아 가끔씩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

다만, 매번 맛있게 먹으면서도 요리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가족들은 상당히 힘들어했다. 

나는 철저하게 원래의 이름을 고집하며 비슷한 우리나라의 요리를 거론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부타동이 돼지고기 덮밥이니, 오니기리가 삼각김밥이니 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조금이라도 품격을 올려보자는 개똥같은 허세를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텐신항의 경우도 그냥 '게살 달걀 덮밥'이라는 아내의 한 줄 평이 있었지만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 유명 셰프의 이름을 들먹이며  음식의 가치를 올리려 노력했다.

얄팍하고 뻔하며, 거짓말이 절반 정도 섞인 허세를 가족들도 잘 알고 있기에 

잠깐의 실랑이를 벌이고 한 번 웃으며 식사를 하면 식탁에 까르르 웃음꽃이 핀다. 


행복이 별거냐? 웃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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