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

손뜨개에 대한 추억

by 김작가

나는 손뜨개한 것을 좋아한다. 털실로 짠 바지를 우리 집에서는 ‘개바지’라고 불렀다. 나는 개바지를 입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언니는 원피스를 입고 단정하게 서 있는데 나는 허리 부분이 고무줄로 되어 있는 개바지를 입고 짝다리에 배를 내밀고 있다. 나름 단정하게 입는다고 티셔츠를 고무줄 바지 속에 넣었는데 배가 더 불룩하게 보인다. 회색톤의 그 개바지는 나중에 다른 색깔이 더 섞였다. 이유는 내가 키가 크면 엄마가 바지를 풀어서 다른 털실을 연결해서 더 크게 짜줬다. 엄마가 나더러 바지 끝을 붙잡고 있으라고 하고 실을 풀어서 둥글게 말던 기억이 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게 하고 실을 그 위로 당기면 꼬불꼬불하던 실이 펴져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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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엄마가 짜준 스웨터를 입고 있다. 어렸을 때 입은 개바지는 겉뜨기나 안뜨기로만 되어 있었는데 초등학교 졸업식에 입은 스웨터는 모양이 들어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가 엄마에게 모양 넣는 손뜨개 법을 가르쳐 줬다. 엄마와 언니가 대바늘을 들고 한 줄 한 줄 뜨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졸업식 날까지 스웨터가 완성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앞면이 다 떠질 무렵 내 몸에 대보며 더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의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앞면, 뒷면, 팔로 나뉘어 있던 털실이 초등학교 졸업식 전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니 스웨터로 완성되어 있었다. 새 옷이 생겼다. 그런데 조금 작고 껄끄러웠다. 실이 모자란다며 다른 털실을 연결해서 소매 부분의 색 배합이 조금 이상했다. 기대에 부풀어 있던 새 옷을 졸업식에 입고 가서 사진도 찍었는데 그 뒤에는 별로 입지 않았다. 남들이 안 입으니까 나도 입기가 좀 민망했다. 당시 기계로 짜낸 옷들이 얇고 예쁜 색깔로 나오는데 손으로 짠 털실 옷은 두껍고 껄끄럽다며 촌스럽게 여기던 풍조에 나도 휩쓸렸던 것 같다.


딸이 두툼하게 짠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고 싶다며 털실을 샀다. 한 코 고무뜨기를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재미있어 보인다. 내가 몇 줄 떠본다며 잡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뜬다. 등이 빠질 듯이 아픈데도 바늘과 실을 내려놓지 못한다. 한 코마다 주의를 모아서 한 줄씩 뜰 때마다 뭔가 완성되어가는 뿌듯함이 좋다. 딸은 한 코 뜰 때마다 실을 옮기지만 나는 엄마가 검지에 털실을 끼고 뜨던 모습으로 했더니 속도가 훨씬 빠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딸보다 내가 손뜨개했던 경험이 더 많다. 엄마가 털실로 옷을 짤 때 내가 옆에서 하고 싶다고 하면 바늘을 건네준 적이 있다. 내 나이 서른에 털실로 짠 스웨터가 입고 싶어서 앞면과 뒷면을 뜨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완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뜨개질이 지루해서 언니에게 넘겼다. 그러니 딸보다는 내가 뜨개질에 조금 더 익숙하다.


초등학교 졸업식 이후 한동안 멀리했다지만 얇은 면사로 언니가 짜준 카디건을 20년 가까이 매년 입는다. 여름철 에어컨의 찬 바람이 버거울 때마다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는 옷이다. 언니가 나의 딸이 아기였을 적에 선물해준 원피스와 모자, 목도리를 정성스럽게 보관한다. 내가 어린 시절 입던 털이 날리는 껄끄러운 재질이 아니라 부드럽다. 떠준 사람의 정성 때문인지 따뜻하다. 어쩌면 딸에게 사랑받은 증거물로 남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손뜨개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제대로 완성한 적은 없다. 딸이 털실로 짠 목도리를 하고 싶다는 말에 해주고 싶다. 딸의 속도로 뜨면 목도리 하나 완성하는데 몇 년의 시간이 예상된다. 그러다 보면 서른 살의 나처럼 털실 뜨기를 지루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내가 못하는 대신 언니가 딸에게 선물해준 손뜨개의 따뜻한 정서를 이제라도 전달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한 코 고무뜨기를 하며 주의를 모으다 보면 등과 허리가 뻣뻣하고 팔이 아프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지 않아서 좋다. 잡념이 사라지고 시간도 훌쩍 지난다. 목도리는 성큼성큼 길어지고 털실은 부피가 줄어든다. 딸의 목에 둘러보며 온기를 나누는 시간은 행복하다.


유튜브에서 털실 연결하는 법과 마무리하는 법을 배우며 목도리를 완성했다. 엄마와 언니가 나에게 떠준 매끄러운 맛은 없어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딸의 목도리가 완성되어 기쁘다. 딸이 목도리를 두르고 외출한다. 털실 연결하고 자투리를 실 사이에 끼웠는데 삐져나온다. 우리는 키득거리며 삐져나온 털실을 가위로 자른다. 자투리 실이 보여도 싫은 내색 안 하는 딸에게 고맙다.


내가 뜨다가 넘긴 것을 언니가 완성해서 나에게 다시 준 스웨터가 있다. 보풀이 나기도 했고, 추위를 많이 타다보니 스웨터를 입으려고 할 때면 바깥 날씨가 포근해서 안 어울리고 가을 끝 무렵 입으려고 하면 추워서 못 입다 보니 언젠가부터 장롱에 고이 모셔져 있다. 올해는 나와 언니의 합작품인 스웨터를 꼭 다시 입고 싶다. 검은색에 은사가 섞인 스웨터를 입고 딸의 파란색 목도리를 빌려서 목에 도톰하게 두르고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손뜨개로 사랑받은 기억에 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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