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쉼
<첫날>
난생처음 템플스테이를 한다. 3월 초순의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사찰의 벤치에 앉아 새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봄기운 머금은 바람이 내 얼굴과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간혹 산에서 내려가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도심의 소리도 섞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몇백 미터 산으로 올라오니 바위와 나무로 둘러싸인 금선사가 있고 나는 여기서 내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쉬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쉬라는 템플스테이 진행해 주는 보살님의 말이 적정하다.
사찰에 도착해서 물병에 물을 담다가 스님을 만났는데 음양탕을 소개했다. 평소에 미지근하게 물 마시는지라 음양탕을 반가워했더니 스님께서 몸이 차가우면 물이나 차를 따뜻하게 먹어야 좋다는 말씀과 코어에 중심 잡고 발바닥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며 걷기 명상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도 해준다. 짧은 시간 스님과 멀찍이 떨어져서 나눈 대화가 따뜻하고 풍족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서 실내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취소됐다.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사람들은 금선사 경내를 소개받고 잠시 걷기 명상을 한다. 경내를 돌며 걷기 명상할 때 스님의 조언을 잘 실천하고 싶었으나 돌계단을 걸으며 호흡하기에도 바빠서 코어에는 신경 쓰지 못한다. 그래도 나의 호흡과 몸의 감촉을 느끼며 느리게 걷는 시간이 좋다. 내 앞사람과 거리가 좀 멀어져도 빨리 걸으려 애쓰지 않는다. 내 뒤에 있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드느라 한쪽으로 비켜서서 천천히 걸을 뿐이다. 대적광전 앞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에 마음이 급해져서 걸음이 조금 빨라지지만 걷고 있는 나와 만나려고 한다.
난생처음 템플스테이 하면서 예불도 참여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걷기 명상과 경내 소개가 끝나고 대적광전에 가서 108배와 명상을 한다. 일백여덟 번에 마음 끄달리지 않고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절하면서 나와 공간이 연결되어 좋은 순간으로 물들기를 기원한다. 절하면서 ‘내 생각’, ‘내 마음’, ‘내 것’을 내려놓고, 명상하며 ‘지금, 여기’에 주의를 모으니 편안하다.
공양 시간을 지키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5시에 공양간으로 간다. 음식 담을 때 일회용 비닐장갑을 한 손에 낀다. 코로나 확진자가 워낙 많아서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처다. 투명 칸막이 쳐진 테이블에 앉아 음식의 질감을 느끼며 묵언 식사한다.
식사 후 산사의 벤치에 앉아 들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며 말없이 앉아 있다. 템플스테이에서 되도록 묵언하라고 하던데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해 준다. 다른 참석자들 신경 쓰지 않고, 일주문 넘어오기 전 이런저런 일들도 내려놓고 있으니 걱정도 없고 불편도 없다. 묵언이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자동으로 만들어준다.
5시에 저녁 공양하고 어느새 7시가 되어 간다. 타종이 끝난 이후 서서히 어둠이 덮이고 있다. 멀리 서울 시내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의 속도에 맞춰 바람의 온기도 차갑게 변해 간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잠시 서서 걷기도 하면서 고요하다. 이 시간이 그저 좋다. 내일 일주문을 나서며 내가 다시 짊어질 삶의 무게가 무거울 때 지금의 이 평안한 순간을 아련히 기억하고 싶다.
<둘째 날>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간밤에 뒤척였다. 푹 자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한 순간 얕은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빗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루 밑에 벗어둔 운동화가 젖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을 일으키지 않고 잠을 청했다. 잠이 깰 때마다 개울의 물 내려가는 소리가 커진다. 템플스테이 주변이 커다란 바위로 둘러싸인 데다 비가 내리니까 물의 양이 많아져서인가 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의도적으로 미소 짓는다. 어젯밤의 얕은 잠에 대해 불평하려던 마음이 미소와 함께 사라진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내 몸 상태를 점검한다. 손가락과 팔꿈치의 아픈 뼈마디를 살살 어루만지고, 발을 밀었다 당기고 무릎을 구부려보고 허리를 움직여본다. 이만하면 괜찮다.
아침 7시에 공양간 가려니 운동화가 비에 흠씬 젖었다. 비가 내려서 산행과 아침햇살 명상이 취소되고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연꽃 키트를 준다고 한다.
아침 공양 후 테라스에 앉아 비에 젖은 풍경을 바라본다. 안개가 차올라 희뿌옇다가 나무와 계곡이 선명해졌다 한다. 산비둘기가 테라스 근처 소나무 가지를 옮겨 다니다 떠나고 빗방울이 굵어졌다가 가늘어진다. 연꽃 키트 받으러 오라고 했던 시간이 지났다.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 나도 풍경이 되어 가만히 있다. 고즈넉하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살아라, 살아라" 한다. 내 귀에 그렇게 들린다. 개울물 소리가 고즈넉한 산사에서 편안히 쉬었으니 이제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돌계단을 조심히 내려갈 준비를 한다.
이불 커버를 벗기고 방명록을 쓰고 환복(換服)한다. 짐을 들고 나와 인사하는데 사찰에서 일하는 분이 원두커피를 방금 내렸다며 내 물병에 담아주신다. 엊저녁 혼자서 오랫동안 앉아 있던 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다. 북한산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커피와 함께 산의 정기를 마신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일주문을 나서기가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