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빵을 굽다
나의 가족은 아침 식사로 빵이나 떡, 고구마 등을 먹는다.
무, 당근, 대파, 표고버섯, 멸치, 다시마를 넣어 끓인 육수로 밥을 10년 넘게 해 먹다가 아침 식사로 빵이나 떡을 먹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아침을 빵으로 먹자고 했을 때 딸이 반대했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지금은 아침에 밥 먹자고 하면, 잠 깨자마자 밥과 반찬 먹으려면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좀 가벼운 빵이 편하다고 한다.
아침에 빵 먹기 시작할 때는 밥을 챙겨 먹는 것보다 번잡했다. 사과와 바나나 딸기를 믹서기에 갈고 슬라이스햄, 치즈, 베이컨, 채소 등 식빵 사이에 넣어 먹을 걸 매일 다르게 챙기다 보니 식비도 더 들고 아침 시간이 분주했다.
언젠가부터 식빵, 잼, 치즈 정도만 준비한다. 과일은 전날 저녁에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떡은 찰떡류가 좋다. 냉동실에 뒀다가 전날 실온에 꺼내두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식구들과 먹을 수 있다. 식구들이 각자의 시간에 아침을 먹더라도 빵이나 떡은 식사 대용으로 충분하다.
식빵 제조기로 아침마다 빵을 구워 먹어도 좋겠지만 부엌에 살림만 늘어날까 봐 사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착즙기, 빙수기, 식품건조기, 요구르트제조기, 전기 그릴, 전기 찜솥 등도 안 사고 있다.
에어프라이기도 아주 오래 고민하다 구매했다.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꾸면서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없었다. 2년쯤 고구마를 구워 먹지 못하다가 아쉬워서 에어프라이기를 사고 아침 식사로 고구마를 구워서 맛있게 먹는다.
아르바이트하는 딸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식빵 제조기 받고 싶다고 말했다. 빵도 구워 먹고 종종 찹쌀밥 해서 식빵 제조기로 반죽하여 콩고물을 묻히면 인절미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다.
병원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고 웬만큼 아파서는 약도 먹으려 하지 않는 내가 최근 응급실에도 갔고 혈액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심하게 떨어졌다. 기운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서도 파르르 떨리는 상태라 하루하루가 수행 자체다. 그런 내가 식빵 제조기 갖고 싶다고 하니 딸은 반대했다.
내 몸 상태에 따라 무리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조금 더 건강한 빵을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을 말하고, 오랜 시간 지켜보던 식빵 제조기를 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사주면 매우 행복할 거라는 설득 끝에 딸이 식빵 제조기를 샀다.
온라인으로 강력분 밀가루, 버터, 이스트를 사서 첫 번째 식빵 굽기에 도전한다.
먼저 계량컵, 계량스푼, 훅(용기에서 교반 막대 제거 시 사용), 제빵 용기 및 교반 막대를 씻어서 말린다. 기본 사용법을 찬찬히 읽는다. 메뉴 1번 부드러운 빵 만들기를 결정한다. 처음이라 혹시 빵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도 있어서 400g과 600g 중 작은 것으로 선택한다. 물 80ml, 버터 1+1/2 큰 숟가락, 계란 50g, 정제 소금 1/2 작은 숟가락, 설탕 2+1/2 큰 숟가락, 밀가루 강력분 230g, 이스트 1/2 작은 숟가락을 제빵 용기에 순서대로 넣는다. 다이얼을 눌러 메뉴를 선택하고 다시 다이얼을 돌려 빵 굽기를 중간색으로 선택한다. 다시 다이얼을 돌려 중량을 선택하니 2시간 30분 소요 시간이 뜬다.
딸이 사준 식빵 제조기는 상판이 투명해서 진행되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다. 식빵 제조기에 들어있던 가루가 반죽되는 모양이 신기하다. 하얀 가루들이 뭉쳐지고 둥글어진다. 수제비 해 먹어도 될 것 같은 반죽이다. 한참 치대더니 기계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발효 중이다. 용량에 맞춰 재료를 넣고 메뉴를 선택하면 알아서 반죽하고 발효한다. 다시 기계가 작동하고 ‘삐’ 소리가 나더니 따끈따끈한 빵 완성이다.
식구들이 식빵 제조기 앞에 모여 따끈한 빵에 환호한다. 뜨거워서 장갑을 끼고 제빵 용기를 분리한 후 접시에 빵을 쏟는다. 완벽한 빵의 모양새다. 남편이 빵 자르는 칼을 가져온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 포슬한 빵 품평회를 연다.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부드럽다. 소금과 설탕, 버터의 양을 줄여도 괜찮겠다. 슬라이스 아몬드, 호두, 밤, 크랜베리를 섞으면 아몬드 빵, 호두빵, 밤빵, 크랜베리 빵이 되어 다양한 빵으로 모양이 바뀌겠다. 빵 용량을 600g에 맞추면 나의 식구들이 이틀 동안 아침 식사로 먹기에 충분해 보인다.
부엌에 살림살이가 늘었다.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 부엌의 짐만 될까 봐 망설이던 식빵 제조기다. 아침을 빵으로 먹는 습관이 다시 밥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밥을 해 먹기 위해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사용하듯이 이제 아침으로 먹을 빵을 만들기로 했다. 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사준 식빵 제조기는 모양도 마음에 든다. 식빵 제조기로 빵 만들기가 번잡하지도 않다. 재료만 있으면 된다. 앞으로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한 맛이 나는 빵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겠다.
식빵 제조기를 딸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받으면서 무리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때로는 가게에서 파는 빵도 먹고 때로는 소금, 버터, 설탕이 덜 들어간 빵을 집에서 구워 먹어야겠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딸에게 받은 선물이 마음에 쏙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