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 쇼츠 하나를 봤다. 뮤지션 정재형이 배우 배두나를 인터뷰한 영상이다. <기본 10시간 대기라는 할리우드 촬영> 이란 제목으로 짧게 편집되어 있었다. 할리우드는 꿈의 무대를 상징하고 있어선지 그곳에 진출한 배우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다.
촬영 전 대기시간이 한국과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다른지 들려주었다. 한국은 개인 차에서 대기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트레일러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배우에게 전용 트레일러를 제공해 주어 편하지만 그래서인지 10시간 대기도 빈번하다고 한다.
어느 날은 12시간을 기다리다 화가 난 나머지 꼭 한마디를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문을 박차고 나갔댔다. 각오와는 달리 "너네 나 잊은 거 아니지? 나 여기 있으니 알고 있으라고" 친절한 말이 나가고 말았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말하는 내내 웃는 배우에게 물들었는지 함께 웃음이 터졌다. 깔깔거리면서 댓글을 펼쳤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찌그러지고 만다.
'거기서 더 유명했으면 덜기다렸겠지....'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운 반응을 읽어서다. 갑자기 신경질이 확 났다. 이 불쾌감의 근원이 대체 무엇일까 한참 생각하다 알았다. 되는대로 지껄이는 사람이 가진 무심함 때문이었다. 설령 배우가 유명하지 않아 10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대도 대화의 요지와 상관도 없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댓글이다.
무례한 댓글로 언짢아지면서 어디선가 전해들은 일화가 떠올랐다. 마트 계산대에서 직원이 건네는 "봉투 드릴까요?"에 신선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의 오차범위는 '네, 괜찮아요, 아니요' 뿐인데, 가끔 참신한 답안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줘야지 뭐 그런 걸 물어요?" 라거나 "안주면 어디에 담아가라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타인을 고려한 흔적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함은 결국 무례함을 빚어낸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떨지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는 말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도 도통 너그러워지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기분이 상할만한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가하는 경우가 그렇다.
말을 예쁘게 하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이 된다. 매사에 듣기 싫은 말을 골라서 척척 내뱉는 사람은 부주의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최소한, 상대가 기분 상할 만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 깊이 사귀고 싶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공감 능력은 딱 그 정도다. '상대가 어떨까'라고 딱 5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면 된다. 만일, 오늘 기분이 최악의 정점을 찍었다 할지라도 5초의 여유는 꺼낼 수 있는 사람. 고작 그 정도의 배려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마음을 내어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