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0 Log
독감에 걸려, 꼼짝없이 일주일을 집에서 요양했다. 아침에 몸이 조금 가뿐하니, 오랜만에 제법 괜찮은 날씨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베란다 창문으로 따뜻한 햇볕이 들어왔다. 내가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유투브 속보를 보기 전엔 그랬다. 유투브를 틀자, 무안에서 제주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말 행복해야 할 시간에 또 우리나라는 우울에 잠겼다. 탄핵, 계엄령이라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또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나 또한 2014년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잊을만하면 다시 돌아오는 그날, 아파야 할 하루가 더 늘었다. 그때 난 어렸다. 2014년 세월호, 당시 난 20살이었다. 어린 PD였고, 첫 현장이었다. 무서웠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것은 선동하는 정치꾼들과 선동당하는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아이들의 죽음을 가지고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 청와대로 가자! 고 외치던 사람은 사라졌고, 유가족만 남는 일은 매일 일어났다. 우리 또한 앞서 이야기하던 사람을 찾아, 인터뷰 할라 치면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거기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신만 배워왔다. 사람도, 언론도, 모든 것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시간은 나에게 5년을 앗아갔다. 돌아가,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나는 그 시간을 모두 치료받아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리라 생각될 만큼 힘들었고, 죽음을 매일 생각할 만큼 어려웠다.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나를 죽이는 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그곳을 다녀온 나를 원망했고, 나를 미워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난 그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너무나 알았지만, 그래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여전히 그 시간이 겹쳐 보이면 가끔 공황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여전히 4월 16일이 되면 난 안산을 찾는다. 내가 잊으면, 그들과 함께 했던 내가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기억의 교실로 남아있다. 그전엔 화랑유원지에 있었다. 또한 현장에서 만난 온유 어머니를 가끔 만나 뵈러 간다. 온유의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예뻤다. 어머니는 온유 이야기가 마치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는 온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셨다.
여전히 나는 그날 거기서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난 끝까지 기억할 것이다. 인양된 아이의 자고 있는 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는 한 그 아이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난 아침 일찍 원고를 쓰기 위해 길을 나서면서도 내 귀엔 연신 누군가 구조되었다고 이야기가 들리길 원하면서 하루 종일 속보를 들었다. 결국 2명 외엔 모두 사망이라는 결론이 났다. 2024년 추모해야 할 날, 이 날이 부디 유가족만 아파하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