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마음이 먹먹하다니
요즘 살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늘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서 잘 모르다가
갑자기 이삼주 사이에 급격히 안 들리는 티가 났다. 내가 냉장고를 열면 후다닥 튀어오고, 현관의 삑삑삑 소리 나면 자다가도 달려가던 멍뭉이 자식이.. 느리다.
반응이
한
참
후에 온다.
병원에선 노화라고. 간 김에 눈도 봐달라고 하니 백내장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겐 태연하게
- 살구가 노화하는 중이래.
라고 했지만, 사실 무척 마음이 먹먹하다.
살면서 애인과 친구들에게 사랑이 뭐냐고 수백 번 물어봤지만 (나는 질문쟁이요!)
살구와 나(동물과 인간) 사이엔 저 질문이 없다. 필요 없다가 아니라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오늘 밤산책은 산책을 하면서도 이 하루의 마무리 일과가 아득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살구는 익숙한 길을 매번 새롭듯이 킁킁대며,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걸었고 신이 나서 토끼처럼 총총 뛰었다. 더위에 헥헥거렸다.
살구 뒤에서 살구야 라고 불러도 제 갈길만 간다.
살구야 라고 더 높고 크게 불러도 제 할 일만 한다.
줄을 당겨서야 뒤돌아 동그란 두 눈으로 말한다. - 엥?
- 아니야.
더 깊이 잘 수 있고, 청소기 소리에도 도망 덜 다녀도 되고, 털 말릴 때수건으로 귀마개 안 해서 좋을 수 도 있겠네. 라고 굳이 긍정적인 점들을 찾아놨는데
내 목소리도 잘 못 듣는다고 생각하니… 산책하다 콸콸 눈물을 쏟을 뻔했다.
물론 강아지는 신체적 변화를 인간과 다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처럼 슬프련다.
아 오늘 아침 산책에서 남자 둘과 함께 다니는 18살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 안녕.
길에서 가끔 노견(슬픈 단어.. )을 만날 때면 그 모습이 흐뭇하다. 또 저 나이만큼 돼서도 내 옆에 있을 살구가 또렷해져서 신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살구는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잔다.
도무지 나는 살구를 당해낼 수 없다.
봐도봐도 보고 싶은 멍멍이 자식 실컷 보다가 잠들자.